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작성일 : 2019-05-23 11:03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최성광(광주광역시교육청 장학사, 교육학 박사)

5월, 봄이 깊어 간다. 갓난아이의 속살 같던 연둣빛 여린 잎들이 녹음의 진함을 더해가고, 부드럽던 초봄의 햇살이 점차 강한 햇빛으로 바뀌는 시기.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여러 기념일과 석가탄신 휴일이 들어 있어 사람들은 가족이나 지인들과 야외로 나들이 하며 5월의 따뜻함으로 느끼고는 한다. 39년 전 광주도 그러했다. ‘화려한 휴가’가 있기 전까지...

1980년 5월, 전두환과 신군부는 광주에서 ‘화려한 휴가(작전명)’를 잔혹하게 펼쳤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시대가 끝나자,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그해 12월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게 된다. 독재자의 죽음 이후 민주화를 기대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에 반발해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전두환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수부대를 중심으로 한 계엄군을 통해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5월 18일,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광주에서는 계엄군들이 등교하는 전남대 학생들을 막아 세웠고 항의하는 학생들을 진압봉을 앞세워 구타하고 연행하기 시작했다. 또 이 과정에서 만류하던 시민들도 잔혹하게 폭행했다. 계엄군의 진압봉은 경찰의 진압봉과는 다른 형태로, 구타를 당한 시민은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계엄군의 잔인함에 분노한 시민들의 저항과 시위는 더 거세지고 집단화되었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시위대를 잔혹하게 진압하면 겁을 먹고 해산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분노한 광주시민들의 저항은 더 극심해졌다. 도심곳곳에서는 시민과 계엄군의 격렬한 대치와 충돌이 일어났다. 결국 장갑차와 헬기까지 동원하던 계엄군은 전남도청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하기에 이르렀다. 국민을 지키라고 쥐어 준 총과 칼로 국민을 죽이는 야만적인 국가폭력이 또 다시 일어난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는 서로를 위로하며 시민공동체를 이루었다. 잔혹한 폭력 앞에서 광주시민들은 민주주의와 독재타도를 외치며 어떤 이는 헌혈과 주먹밥으로, 어떤 이는 투사회보와 차량시위로, 어떤 이는 시민군이 되어 아비규환의 도시에서 함께 살아남기 위한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항쟁의 마지막 날, 전남도청에 남은 사람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빼앗길지언정 내주지 않는’ 숭고한 희생을 선택하게 된다.

1980년 5월 광주는 이 땅에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렸다. 당시 항쟁은 비극적인 실패로 끝났지만, 이후 전국에서 ‘5월 운동’을 촉발시켰고, 급기야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어 내며 대한민국 민주화의 밑거름이 되었다. 결국 5·18민주화운동은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전두환, 노태우를 내란 및 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처벌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18정신. 그것은 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저항이고, 상처 받은 자에 대한 공감과 위로이며, 이웃에 대한 나눔과 평등이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 2014년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4·16엄마에게 건넨 5·18엄마의 메시지이다. 이와 달리 진상규명을 위해 단식하는 세월호 가족 옆에서 조롱하듯 피자를 먹고, 그 아픔에 소금을 뿌리듯 막말을 해대는 이 시대의 야만은 사회 곳곳에 퍼져있다. 따라서 5·18교육은 광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5·18의 위대한 정신을 통해 우리 아이들을 민주·인권·평화의 가치를 품은 정의로운 민주시민으로 키워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에서 야만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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