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끄·트·머·리

-북항에서-

작성일 : 2019-04-25 11:03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조기호시인

<시>

 

도무지 맞설 수 없어서

도망하고 피해 달아난 곳,

그래서 무참하게 꺾인 몸

마침내 버려야하는 그 막다른 곳을

‘끝’이라 생각하지만

저무는 하구河口,

핏빛 울음으로 등을 곧추세우는 노을을 보라

산꼭대기거나

가파른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져

조각조각 으깨진 절망과 좌절의 물결들이다

달려온 시간들을 부끄러워 마라

등 떠밀던 바람도 탓하지 마라

시퍼렇게 멍이 든 풀잎처럼

황막한 어둠 속에 엎드려

밤마다 부르르 떨며 울었을

상심傷心의 끄트머리,

서서히 노을이 지고

별들이 섬뜩섬뜩 돋아나는

깊고 깜깜한 저 바다

그 두려움 속으로

다시 한 번 몸을 일으켜 당신을 던져야 한다

새롭고 유일한 길,

‘끝’이란

‘길’의 또 다른 이름인 까닭이므로.

 

※북항 : 목포의 북서쪽(뒤개)에 자리잡은 항구로 저녁노을이 아름답다

 

--------------------------【시작 메모】 -------------------------

 

낭패란 뜨거웠던 열망의 크기만큼 더 치욕적일 것이다, 그리고 우직했던 꿈에 대한 모멸과 굴욕이기도 할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그 동안의 모든 수고와 땀이 허망하게 끝이 나고 말았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프고 서럽다고 하여 지금의 순간을 어떻게 끝이라 단언할 수 있겠는가? 끝을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은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넘어지고 뒹굴며 깨지고 부서지며 살아간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고 하여 주저앉으면 안 된다. 필경 길이 끝나는 이 곳 어딘가에 다른 길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더욱 절실한 또 하나의 길이 말이다.

생각건대, 끝이란 처음과 마지막을 오가는 모든 삶의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부디 ‘끝’의 ‘머리’를 붙잡고 일어나서 또 다른 시작의 첫걸음을 내디딜 일이다.

 

【조기호 약력】

▪ 광주일보(84) 및 조선일보(90) 신춘문예 동시 당선

▪ 전남시문학상 및 목포예술상 수상

▪ 전남시인협회부회장, 목포시문학회장, 목포문인협회장 역임

▪ 현) 「목포문학상」 운영위원 및 「한국동시문학회」이사

▪ 현) 목포대학교 평생교육원 ‘동시창작’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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