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책을 함부로 버리는 아이들

작성일 : 2019-04-25 11:13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장 병 호수필가

<수필>

학교 재직 시절의 일이다.

졸업식 날 오후에 학생들이 떠난 빈 교실을 돌아보며 깜짝 놀랐다. 졸업생들이 빠져나간 교실에 책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는 것이었다.

‘왜 자기 책을 가져가지 않았을까?’

나는 교실에 들어가 어떤 책들인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교과서를 비롯해서 참고서와 문제집, 국어사전과 영어사전, 교양도서와 잡지 따위였다. 표지가 손상되거나 모서리가 닳은 것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새 책이나 진배없이 멀쩡하고 번듯한 것들이다. 이게 모두 돈 주고 산 것들이 아닌가. 그리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하여 오랫동안 붙들고 씨름했던 물건들이 아닌가. 아무리 졸업을 했다지만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도 없단 말인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어사전과 영어사전은 더욱 그러했다. 그것들은 대학에 가서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어디 대학뿐인가. 어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들춰보고 의문점을 풀어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더욱이 요즘 같은 평생학습 시대에 그것들은 죽을 때까지 지니고 살아야 할 필수품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것들을 고스란히 놔두고 떠나다니, 앞으로 공부와 담을 쌓고 살 작정이란 말인가.

나는 담임선생님이 야속하게 생각되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애들아! 오늘 이후로 교실에 다시 올 일이 없을 테니, 자기 물건들 모두 챙겨가도록 해라!”

“선생님! 이젠 필요 없는 책들이에요. 보지도 않을 것을 뭐 하러 가져가요?”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또 이렇게 타일러야 하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너희들의 학습을 도와준 고마운 친구들이잖아. 졸업했다고 의리 없이 헌 신짝 버리듯 하면 되겠어? 학창시절의 기념으로라도 책을 집에 가져가도록 해. 지금은 필요 없다고 생각될지 몰라도 앞으로 살다보면 다시 펼쳐봐야 할 경우가 생길 거야.”

그리하여 한 권도 빠짐없이 가져가도록 했으면 교실이 이렇게 험한 꼴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 아닌가.

생활이 풍족해진 탓일까? 아니면 다양한 정보매체의 홍수 때문일까? 요즘 아이들의 책에 대한 관념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 오래된 일이지만, 나의 학창시절만 해도 모두들 책을 귀히 여겼다. 참고서 한 권이라도 선배한테 얻으면 큰 행운이었다. 생활형편이 어려운 관계로 대개 참고서나 문제집은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구입했다. 나도 그 시절의 필독서였던 송성문의 <정통종합영어>와 홍성대의 <수학의 정석>을 헌책으로 공부했다. 헌 참고서나 문제집은 대개 앞 주인이 문제에다 답을 써놓아 버린 경우가 많았다. 그게 공부할 때 여간 성가시지 않았지만, 그래도 책을 싸게 샀다는 이유로 불편을 감수하였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책을 대수롭지 않게 버리고, 잃어버려도 찾지 않는다. 학기 중에도 멀쩡한 교과서가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가 하면, 창밖의 베란다나 화단에 내팽개쳐진 채 빗물을 머금고 있기도 하다. 책을 주워놓고 주인을 찾아도 나타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선후배 간에 책을 물려주는 일은 사라진지 오래다. 어찌하여 이렇게 책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을까.

아무리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발달로 종이 인쇄물이 위축되는 추세라지만, 그래도 책이란 지식의 보고(寶庫)가 아닌가. 이것을 미련 없이 버린다는 것은 곧 독서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부족한 탓이 아니겠는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의 말이다. 그가 소프트웨어의 황제라는 칭호를 들으며 세계 제일의 갑부가 된 것도 독서의 힘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학생이 책을 소홀히 하는 것은 군인이 병기를 소홀히 하는 것과 같다. 병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군인이 전투를 잘할 수 없듯이 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학생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또한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함부로 버릴 수가 없는 일이다. 결국 책을 버리고 간 우리 학생들은 독서에도 관심이 없고, 공부와도 거리가 먼 친구들이라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교실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주워 모으면서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아! 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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