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별명을 지닌 사람들

작성일 : 2019-09-26 11:39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수필가 김  미

 

우리 마을은 농사짓는 들밭이 적다 보니 대부분이 가난하게 살았지만 햇볕만은 넉넉한 양지 마을이었다. 그렇다고 동네가 반듯하게 들어앉은 것도 아니다.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 한그루도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도 없어 길손이 지나다 바라봐도 빈약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그렇지만 햇볕 하나만은 넉넉했기에 마을 안에 대나무가 성해서 가을추수가 끝나면 온갖 작은 새들이 대밭에서 겨울 한철을 보내느라 마을에는 늘 맑은 새소리가 끊임없었다.

추운 겨울에도 해가 뜨는 날이면 햇볕이 마을 안으로 가득차고도 넘쳤다. 겨울에 많은 눈이 내려 흰 무덤처럼 보이던 마을도 해가 나오기만 하면 근방 흰 눈을 지우고 원래의 모습대로 만들어 놓았다. 겨울 한파가 지나고 봄기운이 돌면 양지바른 언덕에서 쑥이나 봄나물, 민들레가 제일 먼저 피어나는 동네였다.

농사일이 많지 않는 마을 사람들은 겨울이면 담장아래 모태서 햇빛을 마음껏 받으며 이야기 나누는 일을 즐겼다.

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마을사람들은 별명 짓는 일을 놀이처럼 즐겼다. 마을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별명이 하나씩은 다 있었다.

제일 많이 불러지는 별명이 똥개였다. 대대로 피부가 검고 체력이 단단했던 똥개아재는 젊어서부터 일을 억세게 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술과 벗을 하며 때로는 호기를 부려 아내인 아짐의 속이 까맣게 타서 재가 되었다. 자녀들은 객지로 일찍 살 길을 찾아 떠났다. 뒤늦게 철이 든 똥개아제는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니며 똥개를 사러 다니셨다. 그 일이 성업을 이뤄 똥개아재는 인근 마을의 소식을 다 꿰고 있었다. 아짐들은 똥개 아재가 들려주는 소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똥개아재와 티격태격 잘 다투는 사람은 띠뿌리 아짐이다. 띠뿌리아짐과 똥개아재가 마음이 잘 맞는 날은 무슨 말이든 ‘그라제’라고 잘 풀리지만 수가 틀리는 날은 띠뿌리 아짐은 똥개 아재를 마치 똥개를 다루듯이 ‘물어라 씩’ 하고 비윗장을 건드셨다.

띠뿌리가 무엇인가? 했더니 자랄 때 마을 뒷동산에 지천으로 뿌리를 내리고 뻗어 있는 풀이름이었다. 대나무뿌리처럼 뿌리가 길어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줄 알 수가 없는 가는 마디로 한없이 이어지는 기차 같은 풀. 띠뿌리 아짐은 수가 틀리면 끝까지 파고드는 성미 탓에 붙은 별명이었다.

어느 마을에나 한 분의 짱뚱이 아재가 계시듯이 우리 마을에도 짱뚱이 아재가 계셨다. 모습에서 붙어진 별명이었다. 야윈 얼굴에 유난이 눈이 튀어 나왔고 피부가 짱뚱어처럼 검은 흑빛이었다. 짱뚱어 아재는 어린 시절 의붓엄마 밑에서 어렵게 자라 일꾼 살이를 하며 몸을 많이 써 버린 탓에 지금은 걸음을 바로 걷지를 못하고 절뚝이신다. 온통 까만 피부에 툭 튀어나온 눈만 깜빡거리는 모습 속에 짱뚱어가 그려진다. 짱뚱어 아재는 술만 보면 그 자리를 떠날 줄을 몰라서 아내인 도토리 아짐에게 죽어라 미움을 받고 사셨다. 도토리 아짐은 생활력이 어찌나 강하던지 돈 버는 일이라면 삼만 리라도 가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없는 살림에도 자녀들을 억척스럽게 가르치는 일을 몸으로 다 해내셨다. 이 부부는 술 때문에 동네가 떠나가도록 싸우셨다. 짱뚱어 아재는 술을 ‘내 놔라’ 도토리 아짐은 ‘술만 마시믄 죽을 줄 알아라’ 하며 날선 대결을 하셨다. 사주를 보는 사람이 얹은 궁합이라서 죽을 때 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기에 사람들은 그리 이해를 해야 했다. 술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더니 짱뚱어 아재가 술병이 나자 그 고샅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사람들은 울타리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고 집안을 살폈지만 마당에 칠복와영심이라는 개들만이 암수 뒤엉켜 뛰어다닌다고 했었다.

목소리가 커서 한 마디 하면 사람들이 다 놀래서 긴장을 하는 양철 아재도 계신다. 양철아재는 체구가 크고 목소리까지 커 화를 자주 내는 편이라서 한 번 고함을 지르면 옆 사람은 경기를 할 정도였다. 양철아재의 곁은 자연스레 사람들이 피하게 되었다. 젊은 시절 힘 좋은 소와 쟁기 하나로 다른 지역으로 소를 끌고 다니며 일을 해서 자녀들을 가르쳤다. 어렵사리 가르친 덕에 양철 아재네 자녀들은 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다. 양철 아재는 맨발로 일을 하다가 발바닥을 쇠붙이에 찔렀으나 간장으로 소독을 하고 된장으로 상처부위를 감싸는 것으로 마무리 했었다. 그 후 상처가 덧나 일손을 놓게 되었으며 발등이 쑥 호빵처럼 늘 부어서 지팡이에 의지해서 집밖으로 나오셨다.

닐리리 아짐은 똥개아재의 아내이다. 이 아짐은 노래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잘한다. 장소를 불문하고 노래가 당신의 표현 예술이었다. 그래서 붙어진 별명이다. 닐리리 아짐이 있는 자리는 어디나 흥겹다. 초상집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싸움판에서도 노래를 불러 때론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닐리리아짐은 그러거나 말거나다. ‘인생 별것 있어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가는 것 즐겁게 놀다 가야지’ 하는 주의였다.

바작 아짐도 계신다. 지금은 농업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까 싶지만 예전에는 바작을 지게에 얹어서 짐을 나를 때 사용하는 농기구였다. 주입구가 상당히 넓다. 바작 아짐도 입이 크고 입속은 깊다. 하품할 때 입을 보면 아득한 동굴 속 같다. 큰 입만큼 입으로 하는 일은 뭐든 잘 하신다. 말도 웃음도 흉내까지 요란스럽게 내신다. 맘도 넓다. 동네에 궃은 일은 다 하지만 입으로 다 공치사를 해 버려 그 공이 깎이곤 했었다. 말을 할 때, 웃을 때 밥 먹을 때 입안에 음식물이나 침이 튀어 나올 때도 있어 깨순이 아짐은 질색팔색을 뛴다.

깨순이 아짐은 얼굴에 죽은 깨가 많아 붙어진 별명이다. 깨순이 아짐은 유난히 깔끔을 떠는 편이다. 그냥 먹어도 될 법한 반찬도 한 번 밥상에서 먹은 것이니 벌려야 한다고 다 버린다. 마을 회관에서 밥을 드실 때도 따로 드신다. 여러 사람이 밥을 먹다보면 침이 튀고 간혹 젓가락질로 반찬을 들었다 났다 해서 입맛이 달아난다는 이유다. 그러나 생각보다 당신 집안 정리는 그렇지만은 않아 아리송할 때도 있었다.

춘향이 아짐도 계신다. 춘향이 아짐은 당채 말이 없다. 누구 흉을 볼까. 그저 입만 살짝 벌려 웃으면 그만이다. 걸음도 잠자리처럼 포르르 날을 것처럼 걷는다. 춘향이 아짐은 압력 밥솥이 처음 나올 무렵 딸이 사주며 김을 뺄 때 조심해야 한다며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단다. 잘못 사용 하다가 크게 다쳤다는 뉴스에 나온 이야기까지 전하면서 말이다. 평소 겁이 많은 춘향이 아짐은 압력 밥솥에 밥을 하던 첫날 밥이 다 되어 밥솥 추가 요란하게 김이 새 나왔다. 처음듣는 요란한 소리에 겁에 떨다가 춘향이 아짐은 부엌 문 밖에 서서 지개 작대기로 손을 길게 뻗어 추를 밀어 김을 뺐단다. 하필이면 그 순간을 똥개 아재에게 들켜 한 참 동안 마을에 웃음을 주었다.

감나무집 우두거니 아재도 있다. 아재 연세 80이건만 평생을 먼산바라기만 하신다. 우드거니 아재가 젊은 날 마을 효도 관광을 다녀오셨다. 의례 마을 분들이 버스 안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면 누군가는 모자를 뒤집어 노래 값을 받는다. 그것을 ‘오브리’ 금액이라고 했다. 여행을 마치는 날 결산을 하면서 오브리가 얼마라고 보고를 하자 우두거니 아재는 버럭 화를 내셨단다. ‘언제 오브리 술은 젊은 것들끼리 먹었냐? 늙었다고 무시했냐’고 큰 눈을 부릅뜨고 벌겋게 달궈진 얼굴빛으로 화를 내자 어리둥절했던 사람들은 우두거니 아재의 설명을 듣고 그것은 노래 부른 사람이 기분이 좋아서 내는 노래 값이라고 설명을 했었다.

꺼꾸리 아짐도 계신다. 꺼꾸리 아짐은 태어날 때 거꿀로 태어나서 늙을 때까지 그 별명으로 불러지고 계신다. 아짐은 춤쟁이시다. 젊어서 영감님이 작은집을 두어 속에 화병이 났다. 사람들이 속앓이 하지 말고 춤이라도 배우라고 해서 춤과 함께 한 평생을 하다 보니 춤선생이 되었다. 멋쟁이다. 사람들이 다 고샅에서 햇볕 바라기를 해도 그 아짐은 잠자리 날개처럼 차려입고 춤을 추려 나가신다. 이렇게 우리 마을 사람들은 햇볕이 넉넉한 마을에서 생활은 여유롭지 않지만 서로가 별명을 부르면 굵은 주름진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피어난다. 지금은 다들 연로하셔 별명을 부를 때 바람 빠진 소리가 나지만 별명이 불러질 때 숨겨진 이가 꽃잎처럼 환하게 피어 나곤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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