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12월의 편지

작성일 : 2019-12-19 10:28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조기호

 

몸을 뒤척이며,

하염없는 눈발 속

마른 가지로 우두커니 서는

사랑이라 업신여기지 않기 바랍니다.

 

가슴을 후비며

가파르게 꽃잎들이 날아오르던

얼룩진 바람의 첫 마음에 기대어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리던

헐벗은 그 언덕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는

한 그루의 어리석음이라 여겨주십시오.

 

창 밖,

가까이 내려앉기 위하여

죽을힘을 다해 퍼덕거리며

어둠 속을 비집고 바삐 달려와

깨어진 날개를 서로 껴안고 마침내

한 방울의 눈물로 스러지는

저 눈들의 찬란한 주검을 봅니다.

 

얼마나 더 많은 바람에 베여야

얼마나 더 많은 눈발을 짊어져야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인지요,

사랑은 정작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요.

 

아쉬움을

덧없음을

그리고 속절없음을

죄다 끌어안고

내 안에 눈보라치는 무지몽매한 그리움을

문득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처마 끝 불빛은 가물거리고

밤새워 눈은 내리는데

하얀 발등 위에 서늘하게 붐비는

당신은

차마 이렇듯 뜨겁고 깊습니다.

 

 

-------------------- 【시작메모】 ----------------------------------

 

12월이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간다. 가만히 한 해를 되돌아보면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도 많았으련만 머리에 떠오르는 일이란 늘 아쉽고 섭섭했고 안타까웠던 일들뿐이다. 좋은 감정은 좋은 그대로 금방 잊혀 지지만, 아픈 마음(상처)이란 좀처럼 우리의 가슴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까닭이다.

저마다 새해 첫날의 꿈과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들뜬 가슴으로 다짐했던 그 첫 마음. 그러나 그 마음을 지키고 이루어가는 일이란 어느 누구에게도 녹록한 일이 아니었으리라. 깨어지고 부서지고 바꿔야 했고, 더러는 포기하거나 좌절하여 쓰러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니 한 해 동안의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동안 했던 일들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은 또한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었는가. 그저 먹고사는 일에 매여 앞만 보고 달렸을 내 모습의 초라함에 부끄러워진다. 한결같이 나를 위한 시간들뿐이었을 것이다. 사랑이 없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불현듯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갑자기 보고 싶어지고 만나 보듬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랑에 대해 무심했던 그들을 향해 불량한(?) 마음으로 노래한다. 왜 나를 불러주지 않았느냐고, 왜 우리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느냐고… 첫눈이 내리는 날, 무작정 거리를 방황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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