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운명에 굴복하지 않기

작성일 : 2020-05-21 11:27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장 병 호

세상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불행한 일을 당하는 수가 있다.

떠올리기조차 싫은 일이지만 예전에 한강 다리가 끊어지거나 백화점이 무너진 일, 최근에 수학여행 가던 배가 침몰한 일 따위는 어느 날 갑자기 마른하늘의 벼락처럼 터진 일이다. 만약 그러한 사고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다들 사전 대비를 잘하여 희생자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이라는 손님은 언제나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터라 우리는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불행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야속한 운명을 저주하며 절망의 나락에 빠지는 것이고, 하나는 그 속에서나마 한 줄기 가능성을 찾아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옛날 왕조시대의 유배객들을 보면 울분과 통한의 세월을 보내다 화병으로 죽은 이도 있지만, 그 기간을 학문 연마의 기회로 삼아 제자를 기르며 숱한 저서를 남긴 이도 있다.

청춘시절에 본 영화 <빠삐용>(1973)에서도 주인공은 절해고도에 갇혀서도 끝없이 탈출을 시도하여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지만, 탈출을 포기한 동료 죄수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을 쓸쓸히 바라봐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평소 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곧잘 끌리곤 한다. 무엇보다도 신체장애를 지닌 사람이 열등감을 극복하고 당당히 자아실현에 이르는 모습을 볼 때 진한 감동을 느낀다.

얼마 전에 호주 출신 닉 부이치치(Nick Vujicic)라는 청년의 영상을 본 일이 있다. 그는 팔다리가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그가 가진 것은 몸통 끝에 간신히 달린 두 개의 발가락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발가락에 보조기계를 달아 글씨를 쓰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서핑도 하고, 드럼도 치고, 골프도 즐긴다.

어릴 때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여 우울증에 빠져 차라리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닉은 아름다워. 하나님이 널 도와줄 거야.”하고 격려를 해준 덕분에 고비를 잘 넘길 수 있었다.

“팔다리가 없는 제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 바로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화를 내지 않고 가진 것에 감사하기 때문이에요. 행복은 밖에서 찾는 게 아닙니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 고명한 철학자의 금언보다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미모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건강한 아들까지 낳았다. 그리고 요즘은 세계 각국을 순회하면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강연을 하고 있다. 2010년 우리나라에도 와서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실패는 항상 교훈을 줍니다. 실패할 때마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인생의 소중한 것들은 절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계속 시도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실패를 통해 배울 수가 있으니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말라는 이야기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장애를 몸소 이겨낸 사람의 체험담이기에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또 한 사람, 닉 부이치치와 같이 선천성 장애를 가지고도 엄청난 성취를 이룬 주인공이 있다. 바로 미국 애리조나에 사는 제시카 콕스(Jessica Cox)라는 아가씨다.

그도 두 팔이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그렇지만 발을 사용하여 밥을 먹고, 글을 쓰고, 세수도 하고, 화장도 하고, 계란부침도 만든다.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도 보내며, 콘택트렌즈도 스스로 착용한다. 컴퓨터 자판도 잘 다루어 1분에 스물다섯 단어를 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다섯 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하여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태권도도 열 살 때부터 시작하여 현재 공인 2단이다.

“저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아직 해내지 못했다.’가 있을 뿐이에요.”

얼마나 긍정적인 사고인가. 이러한 긍정성이 오늘의 그를 만들지 않았는가 싶다.

그는 자동차도 장애인차량이 아닌 일반차량을 운전한다고 한다. 일반차량을 운전하는 까닭은 장애인이라고 하여 특별 대접을 받고 싶지 않고, 일반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하기 위해서란다.

제시카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다에 나가 파도타기를 하고,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물론 그것을 배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통사람들은 6개월이면 끝낼 수 있는 비행기 조종 교습을 그는 3년이나 걸려서 마쳤다. 그리하여 2008년 단독비행에 성공했다.

“저는 무슨 일이든 일단 '한다!'고 말해요. 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다고 생각지 않거든요.”

사지가 멀쩡한 사람도 일이 뜻대로 안 되면 쉽사리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할 때,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준다. 그는 현재 동기부여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2013년 5월에는 우리나라에도 다녀갔다.

인간승리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닉 부이치치와 제시카 콕스가 자유롭지 못한 자기 신체를 비관하면서 그늘 속에서 지냈다면 지금과 같이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될 수 있을까? “너는 도저히 못 할 거야!”하고 남들이 생각했던 것들을 “나라고 왜 못해?”하고 치열하게 맞섰기 때문에 오늘날 세계인의 경탄과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운명은 결국 자기가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태어날 수는 없지만, 태어난 이후의 삶은 자기 의지로 바꾸어갈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에 불평하기에 앞서 현실을 긍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를 찾아서 도전한다면 얼마든지 운명을 바꾸어갈 수 있는 것이다.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우리나라의 이희아가 그러했고, 오체불만족의 주인공 일본의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가 그러하지 않은가. 자기의 운명에 굴복하지 않는 것, 불운에 슬퍼하지 않고 꿋꿋이 일어서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승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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