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뒤꼍

작성일 : 2020-06-18 10:10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미

 

비가 귀한 온다는 예보를 들었다. 뒷날 새벽부터 온다더니 오후부터 하늘은 낮게 가라앉았다. 습한 기온과 함께 사방은 먹빛으로 변해갔다.

간절하게 기다렸던 까닭에 반가운 분을 모시는 기분이다. 빈집 뒤꼍 촉촉할 땅에 어린 모종을 심고 싶은 절실함 때문이다.

초저녁 이었다. 살갗에 와 닫는 비는 이슬방울로 시작됐다.

점차 빗방울 굵기가 더해가는 소리를 방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내일 장이니 일찍 장터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릿속으로 헤아려 본다. 옥수수, 고구마순, 참외 모종 등이다. 뒷날 장터로 나서기에는 이른 시간에 눈이 떠졌다.

결혼이후 함께 했던 뒤꼍 모습을 그려 보았다. 결혼하기 위해 처음 마당에 들어섰을 때 효성스런 둘째 시숙께서 홍시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심었다는 장두감나무가 뒤꼍에 있었다. 어린 나무였다. 마치 첫 교복 입은 소년을 마주하는 풋풋함이 느껴졌다. 뒤꼍이 시작되는 자리였다. 감나무 아래는 부추가 낮게 자라고 있었다. 농가 어느 집이나 있을 법한 양념채소가 저기에 있네!. 반가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 곁에는 넓고 단단해 보이는 장독대가 있었다. 한 때는 대식구의 맛을 책임 진 음식 곳간의 역할을 감당한 장독들은 신뢰감 지닌 사람의 흔적 같았다. 크고 많은 독들 보니 음식에 대한 손맛비중이 어느 집보다는 클 것 같은 짐작이 들었다.

안 방 뒷문 앞에도 수령이 짧은 듯 집게손가락과 중지를 마주 한 두께만큼의 나무 한 그루 있었다. 단감나무라고 했다.

두 감나무 사이에 있는 장독대는 집 지을 때 깨나 공력 들인 흔적이 느껴졌다. 시멘트만이 아니라 베개 크기만 한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려 돌층계로 만들진 공간이었다. 작은 섬처럼 부엌과는 떨어진 곳이었다.

부엌문에서 장독대로 오르기 위해서는 서너 발을 걸어야 했고 본체의 지시락 물이 흘러내릴 수 있게 또랑도 있었다. 그 폭과 넓이도 상당했었다. 자잘한 돌들로 단단하게 물길이 흐르도록 되어 있었다.

그늘지고 축축했지만 아득했고 고요한 정적이 느껴진 곳이었다.

시집살이 시작하는 나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겠다는 친근감까지 생기는 공간이었다. 뒤뜰은 새댁 시절 집안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지거나 입덧으로 속이 울렁거릴 때는 장독대를 비켜선 굴뚝 아래로 갔다. 쪼그리고 한참 그 고요 속에 몸을 기대고 나면 거짓말처럼 마음도 몸도 조여지는 느낌이 들어 일어설 힘을 얻었다.

삼복더위에도 뒷문을 열면 시원한 냉기가 방안의 뜨거운 열기를 한 풀 내려앉게 해 주었다. 확실하게 뒤꼍은 뭔가 끊어 오르는 속을 잠재우는 힘이 있는 곳이었다.

친정어머니는 보이는 마당보다 뒤뜰 정리를 잘 해야 집이 정갈한 것이라 했다. 얼굴 단속에만 몰두하지 말고 마음 가꾸는 것이 더 먼저라며 겉치장에 신경 쓰는 딸자식을 나무랬다. 뒤꼍은 집의 마음 속 같은 곳이라 여기기에 집 구경에 뒤뜰을 더 눈여겨보는 버릇이 있다.

올망졸망했던 조카들 명절 때 집에 오면 왁자지껄하게 오전을 보낸다. 느닷없이 집안이 조용해 뒤꼍을 돌아보면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저 아이들도 내면의 씨앗 키우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피해주곤 했다.

식구 같던 개도 한 더위에는 뒤꼍의 그늘 속에 다리 펴 코 박고 생각에 잠겨 있곤 했다. 저녁이면 늙은 고양이들 아기울음소리 지르며 암수가 서로의 몸을 탐하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숨기고 싶은 비밀을 눈감아주는 너그러움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처럼 은밀하게 지냈던 뒤꼍 남겨 두고 이사를 해야 했다. 빈집으로 수 십 년을 외롭게 지냈던 곳에 마을뒷길이 났다. 뒤꼍의 식구 같던 감나무, 장독대, 또랑 등이 망가지고 베어졌다. 뒤뜰 흙과 짙은 고요는 여전히 남았다. 콩을 심고 싶었다. 낙엽들이 쌓여 기름진 검은 흙빛이 뭔가 길러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밤콩 ,옥수수, 완두콩, 호박, 고구마, 생강, 모종들을 심었다.

빈집의 뒤꼍은 고요의 힘으로 푸른 잎들을 키워내고 있다. 푸른 것들이 차츰 커나는 것이 보고 싶어 자주 들러 살피는 재미가 크다. 마치 뒤꼍에 나홀로 비밀 식구 기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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