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초이렛날

작성일 : 2020-07-16 09:58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미

 

이월 초이렛날은 시부모님의 제삿날이다. 새 달력이 나오면 제삿날을 먼저 살피게 된다.

금연 일정도 겹치지 않아 다행이다. 삼월 초순이니 예년보다 빠른 편이다. 나에겐 가족 생일은 뒷전이었다.

구남매나 되는 형제들이 다 모이는 제사가 해마다 마음 쓰인다. 왜 아니겠는가. 집안 형편,상 막내며느리가 모시게 되니 모든 면에서 서툰 솜씨에다 손윗 형님들은 살림에 고수들이니 날짜가 다가오면 긴장부터 된다.

그동안은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이 없이 지내다 보니 삼십 삼년 째가 되어 버렸다. 똥배짱이라도 생겼는지 이젠 불만이 하나씩 튀어 나온다. 집은 왜 이렇게 구석진 곳이 많아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는 건지. 형님들이 들으신다면 괘씸하게 받아드리시겠지만 형제들은 왜 이리 많아 이부자리까지 손볼 일이 쌓여 마음이 먼저 지쳤다. 온 힘을 다해 단속을 해도 꼭 빠진 곳이 있어 설마 저것까지야 싶어 내팽개쳐 놓으면 그것이 떡하니 나와 눈앞에 얼씬 거린다. 형님들이 가까이 계셔 음식장만도 거들어 주지만 그 고마움은 뒷전이고 고약한 심술이 생겼다. 이 제사는 끝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상님께 드릴 제수용품도 사야하고 형제들이 많으니 드실 음식도 살펴야 하니 몇 번에 걸쳐 장을 보게 된다.

이번에도 그렇다. 홍어를 사면서 큼직한 것을 사면 좋을 걸 적은 것으로 산 탓에 먹다가 떨어져 버리니 형제들 뵙기가 민망스러웠다. 괜히 남편 탓으로 돌리고 싶어 밴댕이 속아지가 된다.

남편에게 말을 했더니 다음에는 산만큼 큰 것으로 사서 자존심을 세워주겠단다. 즉각 찰떡같이 받아주는 남편의 한마디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내년에는 제수용품을 푸짐하게 살 수 있게 큰돈을 준비 해 준다고도 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더라고 남편이 받아주는 듯해 남들은 제사도 초 간단하게 소주, 사과, 배, 하나씩 배낭에 매고 산소에서 간결하게 모시다고 중얼 거렸다. ‘누구는 호텔에서 형제들이 만나서 제사를 모신다’고 하더라 했더니 누나들이 들으면 노발대발 혼자만 알고 있으라고 타이른다. 제사문화도 변해가니 언젠가는 간단하게 모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하긴 은희네는 저녁장사를 하다 보니 깜빡 하고 잊을 뻔했단다. 연로하신 고모가 한쪽이 이글어진 가방에 작은 소수 한 병과 쌀 한 되를 가지고 하루 전날 오신단다. 그때서야 허겁지겁 장만을 한다고 해 한참을 웃었던 기억도 있다. 당신들은 제사야말로 살아가는 이유일 수도 있지 싶다.

그래도 제사를 모시고 나면 흡족함보다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더 풍성하게 해서 들러 앉은 형제들이 함박웃음 웃으며 맛있게 먹어야 하는데 하고 말이다. 금년에도 코르나 19 때문에 대도시에 계시는 형님들은 안 오실 줄 알았다. 셋째 둘째 형님은 날 더러 전화를 드리란다. 이번 제사는 여기에 있는 형제들만 모실 테니 오시지 말라고 대답은 ‘네’ 라고 드렸지만 어떻게 일부러 오시지 말라고 당부전화를 드리겠는가. 남편에게 전하고 당신이 전화를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하니 자신은 말을 못하겠단다. 서로 미루다 그만 두었다. 생각기는 형님들이 오시는 것을 포기하고 계실 수도 있는데 미리 전화를 드려서 기분 언짢을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나름 생각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기 싫다는 심산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설마 오시겠나 싶었다.

시금치를 다듬기 위해 햇볕이 환하게 드는 장독대 부근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누군가 환하게 웃으며 두 분의 남자분이 다가 오셨다. 분명 다가오는 모습이 시숙님들 같았다. 우리집안의 지휘관이신 형님께서 제사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며느리들이 와야 한다고 원칙을 정했는데 세계를 뒤흔든 바이러스 때문에 원칙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제사반찬도 이번에는 본대로 찜솥에 쩌서 실파와 통깨, 참기름, 풋마늘 잎을 잘게 쫑쫑 칼질을 해서 갓 익힌 생선 위에 고명으로 발라 놓았다. 뜨건 김이 오른 생선이 화사해 보여 이게 정성인가 싶어 혼자 감탄 했다. 서대, 조기, 장대, 상어, 돔, 민어. 숭어를 대소쿠리에 곱게 다듬어 올려놓았다. 예전에는 생선을 쪄 내는 일이 가장 큰일이었다. 내게는 지금도 그렇다. 밖에 있는 가스불로 찌다가 보니 바빴다. 난간에 설치된 기둥에 생각 없이 꼭 그 자리를 세 번이나 이마를 부딪쳤다. 첫 번째는 아파서 뜬금 했지만 두 번째는 이런 또 부딪치다니 생각이 있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세 번째는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하는 소리가 나왔다. 예전에 이글거리는 숯불에 쪼그리고 앉아 구어 냈던 맛이 비할 수는 없지만 생선구이 냄새가 집안을 가득 찼다.

옆집에 사는 작은 댁 큰 형님이 어라! 생선을 반대방향으로 진설을 했다며 혼겁을 하신다. 동쪽을 보게 하고 생선 등이 위를 보게 하는 거라고 하신다. 미처 생각 못했다. 내년에는 부족했던 부분을 다 채워서 다시 준비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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