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품앗이

작성일 : 2021-04-15 11:02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미

품앗이와 인생살이가 한길처럼 여겨진다. 품앗이로 농사짓던 시절의 일이다. 품앗이는 믿음이었고 미리 챙겨둔 우산 같은 거였다. 품을 앗아 놓으면 그 품 일은 어떠한 경우라도 먼저 받을 수 있다. 바쁜 농사철에 한 사람의 인력 구하기까지는 진땀을 뺐다. 농사짓는 일이라는 것이 하늘에 의존하는 일이기도 했다. 만약 비가 내일모레 온다고 했을 때, 추수하거나 씨앗 뿌리는 일이 시급해지면서 일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농부의 마음은 다 같아 사람의 손 하나를 빌리기 위해 온 동네 대문 밖을 서성이게 된다. 그럴 때 두말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누구 집에 품앗이가 있는데 내일 오라고 하네하면 그것으로 정리된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냥 발을 돌려 다른 집으로 가야 했다.

품앗이의 원칙이라면 품을 갚는 날 최대한 몸을 아끼지 않는 일이었다. 일찍 일터로 가야 한다. 날품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은 남들과 발 맞춰 일터로 나가도 눈치 볼 일이 없지만, 품앗이는 그런 발걸음보다는 빨리 가야 하는 거다. 이른 아침 농기구로 일을 시작할 때 편하게 일거리를 선택할 기회가 있지만, 주인의 입장을 고려해 어려운 밭고랑을 선택하는 사람도 품앗이의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같은 조건이지만 밭도랑 갓 줄은 일하기가 더딜 뿐 아니라, 밭두렁의 묵은 풀 뽑을 때 힘을 써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날일을 하러 온 사람들은 그 줄은 눈치 보며 피하려 한다.

그때 과감하게 그 자리는 품 앗는 사람이 앉아 묵묵히 줄을 맞춰 나갔다. 품앗이는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 일을 든든하게 도와 줄 힘을 빌리는 일이다. 남의 일을 직업적으로 하며 사는 사람들은 품앗이를 선호하지 않았다. 자신의 밥벌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살아왔던 지난 품앗이가 생각난다. 몇십 년 전의 일이다. 장마였지만 유난히 장대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거기다 바람까지 거세게 불어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초저녁이었지만 칠흑 같아 집 앞 도로는 차량이 뜸했다.

이런 날일수록 문단속을 철저하게 해야지 하는 마음에 현관문을 탕, 닫으려는 순간 텅, 소리가 짧고 강하게 들렸고, 차량의 바퀴 밀려가는 소리가 소름이 돋도록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무슨 사고가 난 게 분명했다. 워낙 날씨가 험한 탓에 그냥 방 안으로 들어갈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안에는 어린아이들과 나뿐이었다.

누가 본 것도 아니고 설령 밖에 있는 사람이 나를 믿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싶었다. 아니, 저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 있을까 생각이 미치자 새로운 용기가 났다. 현관에 걸려 있는 비옷과 우산을 펼쳐 들고 밖으로 나갔다. 몰아치는 바람은 받쳐 든 우산을 사정없이 낚아채 듯 저 멀리 날려 버렸다. 사고지점에서는 검은 흔적이 느껴졌고 신음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바람은 일단 나섰으면 빨리 수습을 도와야지 하는 손처럼 비척대는 나를 사정없이 도로변으로 밀었다. 운전자는 온몸을 떨며 얼른 사고 수습을 부탁했다. 환자 이송과 사고 지점을 경찰서에 알렸다. 피해자는 우리 마을에 홀로 사는 아저씨였다. 퇴근 후 자전거 타고 귀가하던 중 당한 사고였다. 운전자는 검은 물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운전자는 한동안 턱까지 심하게 떨며 경련을 일으켰다. 따뜻한 물 한 잔으로 마음의 안정을 도왔다. 사고 현장을 뜨면 도주 운전자가 될 수 있어, 나는 그 자리에서 우산을 받쳐 드렸다. 피해 보호자를 알려 달라고 하지만 혼자 사는 아저씨라서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몰랐고 고통스러워하는 아저씨를 보니 안타까움만 더해졌다. 피해자는 운명을 달리 했다. 한동안 그 현장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우울했다. 그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갔다.

남편이 치루는 선거 때문에 무더운 여름날 유권자를 찾아 들밭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다녔다. 순간순간마다 전해 오는 남편에 대한 지지도는 애간장을 태웠다. 사람을 장대 위에 올려놓고 흔들어 대는 기분이었다. 밥 먹을 수도 잠을 이룰 수도 없는 불안한 나날들로 새가슴이 되어갔다. 그래도 유권자들의 마음을 믿고 뛰어야 한다고 다그치는 남편이 호랑이처럼 겁났다.

남편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막막하고 불안한 순간들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던 날 저녁이었다. 남편은 확신에 찬 모습으로 들어섰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열심히 지지하며 다닌다는 거다. 어딜 가든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왜 나를 그렇게 열심히 돕는 줄을 모르겠다는 거다. 그것도 불안하기만 했다. 시골 선거는 조상 대대로 신상털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후보자 아내가 신발은 왜 그런 것 신느냐며 못 마땅해했다. 알고 보니 신발 장사였다. 어떻게 하든 이때 다 밝혀내야 한다는 심사라서 숨 쉬는 것도 두렵기만 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이 직장까지 휴가 내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남편의 좋아하는 모습에 무작정 좋아할 일만도 아니라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자신은 알려고도 하지 말고 열심히 뛰라고만 했다. 선거에 당선이 되어 인사를 하러 갔다. 그 사람은 무작정 내 손을 잡는 것이다.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슨 일로 득달같이 달려와 내 손부터 잡는 것인지 멀뚱멀뚱하기만 했다. 힘겨운 선거를 도와준 것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으로 인사드렸다.

그는 환한 표정으로 자신은 그날 저녁에 사고를 낸 사람이라고 했다. 너무나 까마득한 옛날 일이었건만 자신은 그날의 나를 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꼭 그 은혜 갚을 기회만 보고 있었다고 했다. 마침 남편이 선거에 출마했다는 소식을 듣고 발 벗고 나섰다고 했다. 그날 나는 간절한 마음을 보듬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더 없이 감사할 뿐이었다. 선거 때문에 맺힌 마음까지 복받쳐 울컥했다. 뒤뜰로 피해 쏟아지는 눈물을 훔쳤다. 대나무가 우거진 울타리에 살구꽃이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환하게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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