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연 꽃

작성일 : 2021-09-15 15:57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박 철 한

 

삼복의 따가운 햇살아래 동그란 연잎들이 나푼거리며 춤을 춘다. 붉거나 흰 꽃을 피우고 펼치는 연들의 군무행렬이 아득히 멀다. 그 규모가 30만 제곱미터를 넘어 동양에서 가장 넓다는 무안 일로읍의 연못, 그 장관에 입부터 벌어진다. 주위를 거니노라면 연잎이 바람에 한닥이는지, 아니면 삼복더위 속 연잎의 부채질에 바람이 이는지 착각에 빠지고 이내 코끝을 스치는 진한 향기에 취하고 만다.

예로부터 연은 맑지 못한 물속에서 자라지만 깨끗한 꽃을 피운다하여 사랑을 받아 왔다. 연은 주로 바닥에 흙이 두껍게 쌓인 못에서 자란다. 뿌리가 흙 속에 묻혀야 되니 바닥에 자갈이 깔린 맑은 물에서는 결코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넓고 깊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을 못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연이 자라지 않은 못까지도 연못이라고 하는 까닭은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못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연을 심은 데서 연유한다. 못의 물은 항상 흐르는 것이 아니고 괴어 있으므로 결코 맑지 않다. 이러한 못에 연을 심어 연못을 만들면 우선 연꽃이나 잎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괴어있는 물에서 날 수 있는 악취를 연의 향기가 막아주는 효과까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이처럼 자칫 구중중하기 쉬운 정원의 못에 연을 심어 미관상 아름다움과 물의 정화는 물론 늘 연의 향기를 맡으며 사는 지혜를 터득한 셈이다.

일찍이 연 재배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중국‘무한’지방을 여행한바 있다. 그 곳에는 끝없이 너른 들판에 연이 재배되고 있었는데 주로 뿌리를 식용하기 위한 근연으로 이른 봄에 심어 초여름에 수확한다. 중국에는 근연뿐만 아니라 관상용 화련과 종자를 식용하는 자련까지 그 품종만도 수백 종에 이른다고 한다.

연은 거의 모든 부분을 먹거나 약으로 쓸 수 있다. 연뿌리와 종자는 식품으로 쓰이며 연뿌리의 마디를 우절, 잎은 하엽, 잎자루를 하경, 꽃의 수술을 연수, 열매를 연실, 꽃 턱을 연방이라 하여 생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또한 연에 종자가 많은 것을 보고 민간에서는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 여성의 옷에 연꽃무늬를 새기고 자손 많이 낳기를 기원했다.

연꽃은 향이 좋아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 차로 쓰이는 종류는 흰 꽃이 피는 백련으로 스님들이 즐겨 마신다는 연향차를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다. 먼저 조그마한 모시주머니를 만들어 두 세 숟가락의 녹차를 담는다. 연꽃이 만개하기 직전에 따서 꽃봉오리 속에 녹차를 담은 모시주머니를 넣고 한지로 감싼다. 연향차는 여러 명이 둘러앉아 큰 그릇에 뜨거운 물을 적당히 붓고 연꽃봉오리를 담가 우려내어 마신다. 한번에 우릴 수 있는 양은 대여섯 잔이 적당하다. 연향차는 대개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보관하면서 세 번까지 우려 마실 수 있으며 연꽃향이 은은하게 베어나는 그 맛이 일품이다.

연잎이 큰 것은 직경이 두자를 넘는 것도 있다. 비가 내릴 때 큰 연잎을 삿갓처럼 머리에 쓰면 웬만한 사람이 거뜬히 비를 피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다. 이처럼 연잎은 두껍고 크며 독성이 없어 예전에는 도시락으로 쓰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삼대가인(三大歌人)으로 불리는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도 ‘연잎에 밥 싸두고 반찬일랑 장만마라 …’라는 구절이 있다. 그릇이라야 무거운 도자기나 사발이 전부였을 시절에는 연잎이 밥이나 반찬을 싸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니 충분히 짐작이 간다. 보길도에서 은거생활을 하며 풍류를 즐긴 윤선도는 특히 못에 연을 심어 정원을 가꾸고 세연정(洗然亭)이라 하였다. 세연정은 인공미와 자연미를 잘 조화시킨 조선 정원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비가 오면 연잎은 요술쟁이가 된다. 빗방울을 하얀 은구슬로 만들어 요리조리 굴리기고 하고 점점 크게 키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은구슬이 무거워지면 곧 실증이 나는지 어김없이 아래로 버리고 금방 또 만든다. 버린 은구슬을 주우려 해도 어디로 사라지는지 영 찾을 길이 없다. 식물은 이처럼 저마다 신비한 재주를 가졌다. 연이나 토란처럼 잎이 큰 식물들은 대개 잎의 표면에 무수히 많은 돌기가 있다. 물방울이 잎에 닿아도 젖지 않고 흘러내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고 만약 비가 올 때 큰 잎에 물이 흠뻑 젖는다면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줄기가 부러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연이나 토란은 아무리 비를 맞아도 잎이 젖지 않으니 꿋꿋하게 버티고 서있을 수가 있다. 일부러 잎에 흙탕물을 뿌린다 해도 순식간에 뿌리치며 여전히 그 순결한 자태를 뽐내는 비결이기도 하다. 식물이 출현하여 수만 년을 사는 동안 어떻게 하면 모진 비바람에 견딜 수 있을지 궁리하면서 익히고 또 익힌 재주일지니 그 오묘한 이치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불교에서는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깨끗한 꽃을 피운다하여 극락세계를 연꽃에 비유하였다. 효녀 심청이 연꽃에서 환생한다는 설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나친 욕심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청정함의 상징인 연꽃처럼 인간도 이 세상의 불의와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말고 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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