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이웃사촌

작성일 : 2025-05-12 11:13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대를 이어 살던 마을 안으로 결혼해 40년 가까이 살았다. 마을 안에는 나도 모르는 집안 내력을 상세히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때로 이웃들이 몰랐으면 하는 과거의 일까지 더 보태어 열거될 때가 있다.

요즘처럼 개인정보를 소중하게 여기는 시대임에도 억지로 막을 수 없는 소문에 노출되어 살게 된다. 알리고 싶지 않는 일까지 알려지니 곤혹스러운 일이다. 그런 관계로 혈육은 아니지만, 한데로 엮인 이웃사촌이다.

이웃사촌은 어디서든 뒷모습만 보고도 느낌이 온다. 그 느낌이 어느새 뇌 속에 심어지는 것인지. 매일 얼굴을 마주하니 표정과 말소리에서도 그분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다. 늘 보던 사람이 안 보여도 사정이 궁금했다. 매일 보는 얼굴이지만, 마을 밖에서 만나면 반가워 웃음꽃이 핀다. 그런 이웃에 저녁이면 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 데 불이 꺼져 있어도 무슨 일인지 자꾸 신경이 쓰인다. 대부분 어르신이다 보니 추운 날 문이 열려 있어도 왜 문이 열려있지 혹시 몸이 아파 못 움직이나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 얼굴이 수척하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도 알고자 묻게 된다. 이웃집 밥상 위에 무엇이 있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니 작은 움직임에도 한 우물의 물처럼 출렁이게 된다.

젊은 사람은 젊은 대로 좋고, 나이가 들면 세상 경험이 많아 기댈 수 있어 좋은 관계들이다. 멀리서 사는 자녀들은 그런 관계까지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가끔은 홀로 사는 부모가 전화 연락이 안 되면 걱정스러운 자녀는 전화하곤 한다. 화살처럼 순간에 달려 나간다. 직접 얼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긴장감에 앞뒤 볼 여지가 없다. 어쩌면 한 우울 속에서 사는 방식이다.

그간에 마을 외향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 아이들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몇 명에 불과하지만, 어르신들은 많이 돌아가셨다. 돌아갔다는 말은 제자리로 다시 갔다는 말처럼 마지막 길을 떠났다. 살아생전 어른들은 건강할 때는 죽음에 세계는 안중에도 없는 듯 열심히 땅을 일구며 근검절약한 모습으로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갈 길을 가는 거라는 듯이 보냈다. 간혹 몸이 불편해 자녀들 곁으로 가는 모습은 염소가 가는 길처럼 마음과 몸은 마을 쪽으로 버티고 있다. 그런저런 이유로 마을 안에 빈집도 늘어갔다. 우린 살면서 이런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상상은 미처 못 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젊어서 미처 생각할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할 당시 아침이면 듬성듬성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아이들은 예외 없이 더 넓은 지역으로 떠났다. 마을로부터 멀리 자신들의 생활 터전을 만들어 갔다. 다시 고향으로 살기 위해 되돌아온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한 집안의 변화 과정을 이웃사촌이기에 고스란히 지켜보게 된다.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좋은 배필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과정도 속속들이 알게 된다. 그들 자녀가 명절이면 마을 안팎으로 뛰어다니며 질러대는 고함에 마을은 시끌벅적했다. 반짝하고, 명절이 지나면 마을에는 아이들 소리가 멈추니 기차 소리가 끝 긴 듯 고요해졌다.

자녀의 자녀들이 더 자라 힘을 얻어 갈수록, 마을을 누비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느새 굽은 허리와 힘을 잃은 다리로 조심조심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그대로인지 농사일에 대한 애정은 여전했다. 농사일에서만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농기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우리 마을은 전체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이 많은 마을이었다. 대부분 자녀들은 부모의 영향으로 성실했다. 몸을 부려 자녀들을 가르치니 입성도 먹성도 무시한 채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 사셨다.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자고 쇠면 일터로 다녔다. 그토록 자녀들을 보살피던 모성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 자식들의 효도에 황송해한다. 사는 일이 사필귀정(事必歸正) 이었다.

이웃사촌으로 살아온 세월은 서로 의지하며 때론 형제자매들보다 더 친밀한 사이로 지내게 된다. 마을 공동체의 생활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서로의 생활에 지나칠 만큼 관심이 많다. 뿐만 아니라, 혼자 감당하기 힘든 개인사도 털어놓고 마음의 등짐을 벗은 듯 홀가분한 기분으로 새 힘을 얻었다. 진심으로 위로를 해 주는 이웃들을 위해 뭔가를 더 할 수 없을까를 고심하던 시간도 많았다.

나보다는 더 오랜 세월을 살아나온 어른들이기에 고전 책처럼 그분들의 생활은 어떤 일깨움을 준다. 어르신이 편찮으시다고 하면 불안감이 밀려왔다. 고정된 문제처럼 답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우려하던 대로 지붕 위에, 생전에 입던 옷이 던져지고, 상두꾼의 상엿소리가 마을 안을 한 바퀴 돌 때면 오래된 고서가 사라져 버린 듯 허탈함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분들의 삶 속에는 내 아이들의 이야기가 엮여 있다. 바쁜 농사일로 두 아이만 집에 두고 농사일에 매달릴 때였다. 두 아이는 손을 잡고 마을 안을 놀이터처럼 돌고 다녔다. 그러다가 하우스 속에서 자라는 새싹을 틔운 어린 모가 내 아이들의 눈에 보였을 것이다. 신기한 놀이를 만난 듯 뽑아 버렸다며 너털웃음을 짓던 어르신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일 년 농사인데 나는 두고두고 미안스러워했다. 그러나 철없는 아이가 한 일인데 어쩌겠냐며 되레 나를 위로했다. 한 마을에서 이웃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억겁의 인연이다. 너나없이 함께 걷던 곳에서 처지면 우린 모두 왜 그러냐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일으켜 세우려 애를 썼다. 이웃사촌으로 사는 일이 그런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을 할지 모르겠지만, 서로의 마음 안에 담아두는 일이다. 이웃사촌은 누구 한 사람 낙오자가 없이 서로 함께 걸을 때가 든든한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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