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이식

작성일 : 2025-06-16 10:04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봄이 무르익으면 묵은 잡풀들로 뒤덮인 텃밭으로 자꾸 눈길이 간다. 힘을 잃어버린 풀들을 걷어내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들로 채우고 싶다. 푸른 기운을 품은 모종들로 줄을 세워 심을 일을 미리 계획해 본다. 여린 모종은 우주의 기운과 내 손길에 힘입어 떡잎을 키우고 푸른 가지에 힘을 얻어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봄이 무르익자, 온 세상에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꽃구경을 핑계 삼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텃밭 보는 일이 숙제장을 보는 것처럼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일은 해야지 기필코 텃밭을 가꾸리라 하면 비가 오거나, 더 급한 일 때문에 뒤로 미루게 된다. 요즘은 기온이 낮아 냉해를 입는다니 신경이 쓰인다. 자꾸 핑계거리로 하루하루 미루게 된다.

묵은 땅을 일굴 때는 왜 땅은 넓은지 누가 감쪽같이 심을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는 허망한 기대까지 하게 된다. 아무리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힘을 쓰는 일이고 보니 등에 땀이 고인다. 흙을 파고, 덩어리를 부수고, 신부를 맞이할 듯 흙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이렇게 모종을 이식하는 일을 시어머니는 처녀가 시집오는 일이라 했다. 모종은 이식이 목표인 까닭에 여분의 공간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기에 모종이 어느 정도 자라면 다른 땅으로 옮겨 심어야 함이 원칙이다. 그런 이유로 모종을 시집보내는 일이라 할 것이다. 모종하기 좋은 날은 이슬비 오는 날, 그 비를 맞아가며 옮겨 심는 것이 가장 좋은 조건이다. 마른 땅보다는 촉촉히 젖은 땅에 이식된 모종이 적응하기 좋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조건의 이식이라고 하더라도 환경이 다른 조건의 흙에서 버티는 과정은 싶지 않다. 심고 난 후 몇 번씩 다독이지만 생각처럼 쉽게 살이 오르지 않는다. 여린 모종이 잘 적응하나 틈만 나면 텃밭으로 발길을 옮긴다.

시댁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친정집만은 못한지 모종이 엉성해진다. 까칠한 피부를 보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인다. 토실토실했던 떡잎들은 외부의 환경에 적응하느라, 가을 잎처럼 타들어 갔다. 혹독한 시련의 시간이 역력히 드러나 보인다.

뒤돌아보면 나 역시 그런 시간이 있었다. 친정집에서는 형제들이 단출해 집안은 조용했다. 신앙적으로도 자유로워 기제사도 지낸 적이 없었다. 시댁도 친정집처럼 그러려니 했던 것이 큰 착오였다. 시집 형제들은 구 남매나 되었다. 시부모님이 계시니 인근에서 거주하는 형제들은 수시로 들락거렸다. 형님은 새벽에도 아침 찬거리가 많아서 가져오셨다며 아무렇지 않게 부엌으로 들어왔다. 시댁 마을에 당신들의 전답이 있다 보니 수시로 오셨다. 새벽 시간 일어나기 전에 형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리면 혼비백산해 옷을 걸쳐 입고 뛰어나가야 했다. 당신들은 늘 다니던 집이지만 나에게는 어렵기만 했다. 물론 형님은 더 어려운 것도 다 도와 힘이 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모든 면에 어설픈 나는 어렵기만 했다. 형님과 시어머니는 수년간 쌓아온 세월이 있으니 쿵 하면 딱하고 맞았지만 나는 늘 안절부절 못했다. 모든 면에 능숙한 형님이 때론 높은 장벽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시어머니께서 형님을 칭찬하는 소리가 너는 왜 그렇게 덜떨어졌냐 라며 비난하는 소리 같았다. 그런 일로 늘 의기소침했던 결혼 초기였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입맛이 달아나 몸이 수척해지기만 했다. 모처럼 친정에 가면 친정 부모님은 무슨 문제가 있나 곁눈질로 나를 살폈다. 그 무렵에는 입 밖으로 내놓을 수 없는 고민으로 몸은 수척해져 갔다. 새 식구인 내가 빨리 적응해야지 그동안 살아왔던 식구들이 나를 위해 삶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당시는 분가해 신혼생활을 하는 주변의 새댁들이 꽃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행복해 보였다. 그때는 나의 애로사항만이 세상에서 제일 큰 벽처럼 느꼈다. 그런 시련의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세찬 비바람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게 버티는 힘을 기르는 일이었다.

벌써 우리 집안에는 토실토실한 며느리들이 호적을 올렸다. 함께는 살지 않지만, 그 아이들도 나처럼 새댁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고 있을 것이다. 때론 답답해할 일도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 다른 환경에서 자신을 적응시키는 시간을 통해 더 단단한 한 집안의 여인으로 거듭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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