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빈손

작성일 : 2025-09-08 13:01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살림에 도움이 되는 것일수록 양손에 가득 쥐어 주면 두 팔에 힘줄이 선명하게 튀어나올 만큼 힘을 다해 든다. 집으로 들어설 때까지 무거워도 무거움을 미처 느낄 사이도 없이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터지고 가슴을 흡족함으로 가득 찬다.

반대로 남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요구할 때 두 손에 가득 든 물건이 가볍기만 했던가. 이렇게 무한정 퍼내도 될까하는 너스레로 엄살을 부린 적은 없던가. 받을 때와 나눌 때 똑 같은 마음으로 기뻤는지 헤아려 본다.

부끄럽게도 나눌 때는 똑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몇 번을 이리저리 셈을 하지 않았나 싶다. 받을 때와 나눌 때가 한마음일 수는 없는 걸까. 빈손을 본다. 나는 자녀들이 우리 집을 올 때면 어느 순간 빈손일 때면 서운한 마음이 든다.

자녀들도 분가해 사니 내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해 본 적이 아득해 항상 마음속에 미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색다른 식재료가 집에 있으면 한 번이나 집에서 장만해볼까 벼루다가도 날이 더우면 더워서 못하겠다, 습하면 습하다고, 몸이 찌뿌둥하다고 음식 장만하는 일을 뒤로 미루게 된다. 이번만은 꼭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식재료를 샀다. 몇 번을 거쳐 시장에 나가기를 반복했다. 살 것도 많다. 과일 가게에 앞에서 진열되어 있는 과일을 보며 망설였다. 자녀들이 사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냥 돌아섰다. 삶고 지지고 볶고 여름철 보양식이라며 옻닭을 준비했다. 자녀들에게는 이 음식이 어떠냐고 물어보고 말고 할 사이도 없었다. 옻 물을 끊이는데도 한나절은 불을 지폈다. 땀을 흠뻑 흘리며 괜히 집에서 음식 장만 했나 하는 후회감도 있었다. 밥한 상 차리는데 무슨 할 일이 이렇게도 많은지 역시 나는 사랑이 가득한 엄마는 아닌 모양이다. 차린다고 차렸으나 뭔가 상 한 귀퉁이가 허전하다 여기니 온갖 반찬이 등장했다. 그럴싸한 상차림이다. 빨리 오면 좋으련만 한참을 기다려도 기별이 없다. 기다리다 생각하니 바쁜 자녀들을 괜히 불러들이는 것인가 걱정도 된다. 음식이 다 식어갈 무렵에야 자녀들이 집안으로 들어선다. 먼저 들어선 아들 부부 손에는 종이 가방이 들려있다. 냉장고에 넣으란다. 냉장고에 급하게 넣으라고 서두르는 걸 보니 먹을 만한 것인가. 은근 기대가 됐다. 둘째가 늦어 더 기다려야했다. 뒤늦게 나타난 둘째 아들 내외는 퇴근 시간이 맞지 않아 기다리다 늦었다고 한다. 먼 거리가 아니건만 밥 한 끼 먹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다시 뜨거워야 할 음식들은 재가열 했다. 맛있게 먹어주기를 기대했건만 임신 중인 큰아이가 태아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못 먹겠다고 한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그전에 맛있게 먹던 일만 생각했다. 다른 음식으로 간신히 먹게 했다. 내 기대감이 무너졌다. 고생하고 장만할 때는 맛있게 먹어 줄 거라 믿었는데 이것까지 생각도 못한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했다. 큰 아이가 먹는 둥 마는 둥하니 나 역시 음식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큰아이는 모기가 윙윙거리니 깜짝 놀란다. 질색하며 짐을 챙긴다. 아이들이 물리면 큰 일 난다며 나선다. 내내 궁금했던 말을 꺼낸다. “가져온 음식이 무엇이냐, 그거라도 먹고 가.” 큰 아이는 무슨 음식이요.” 하며 딴청이다. “냉장고에 넣은 음식.” “, 밑반찬이요.” “동서네 먹으라고.”한다.

형제간에 나누워 먹는 일은 보기 좋고 고마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뭔가 아쉽다. 친정 부모님 생각이 불현 듯 났다. 친정어머니는 늦게 얻은 남매에게 엄하게 가르치는 것이 있었다.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며 주말이면 부모님께 필요한 학비, 반찬을 받아가기 위해 집으로 왔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학비를 타기 위해 손을 벌리는 일이 보통 죄송한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자녀들이 늦은 시간에 교복을 입고 대문을 들어설 때 빈손으로 들어서면 무척 서운해 했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가르치기 위해 죽을 동 살 동 모르고 고된 농사일을 하고 있다. 어디 빈손으로 들어서는 것이냐며 동네 가게로 다시 가게 했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탕 한 봉지라도 사 오는 것이 자식된 도리라고 엄하게 가르쳤다. 자식 된 우리 입장에서는 그 돈도 부모님의 땀방울로 얻어지는 돈이기에 아껴야 한다는 마음이었지만 어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너희들이 졸업해 돈 벌 무렵이면 연로한 아버지는 언제까지 곁에 안 계신다 했다. 지금 조금한 것이라도 입안에 넣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주말이면 적게 받아간 용돈이 다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주초에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과자를 미리 사고 용돈으로 썼다. 아버지는 막내딸이 사 왔다며 합죽한 이로 일을 하시다가도 주머니 속의 딱딱한 그것들을 오물거리며 드셨다. 어머니는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부모님께는 빈손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남에게 얻어먹기만 좋아하면 평생 얻어먹는 일에 익숙해 그렇게 살게 된다며 빈손으로 다니는 걸 무척 나무랬다. 물론 부모는 남은 아니지만 그게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라 했다. 그런 어머니는 가을 추수를 마치면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었다. 뜨거운 김이 오른 인절미와 외할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소주 한 병을 받아 십리 길을 쉬어가며 외갓집에 다녀오셨다. 어머니는 부모님 섬기는 방법을 몸소 행하므로 가르침을 주셨다. 오늘의 내 자녀들이 빈손으로 들어서는 것은 평소 부모님을 섬기지 못한 내 탓으로 여겨야 하리라. 내 탓으로 돌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평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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