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11-10 09:30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박 철 한
예로부터 유교문화가 뿌리 깊었던 우리민족에게는 아들 중에서도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의식이 불문율로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3남 4녀 중 장남으로써 딸만 둘인 필자가 둘째 아이를 낳은 후 부모님께 “이제 애를 그만 낳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노발대발 하셨던 까닭도 그 때문이 아니었으랴. 더불어 1970년대까지의 급격한 인구증가 또한 그와 같은 아들선호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당시만 해도 급격한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까지 등장했었다. 그런데 2020년 기준 우리나라 가임 여성 1명당 출산율이 0.81로써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꼴찌라고 한다. 바야흐로 한 자녀 시대가 된 것이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질 전망이라니 할 말을 잃는다. 전문가들의 분석으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늘날 자녀 여럿 두기를 꺼려하는 원인은 아이들의 양육비 과다, 심각해지는 취업난, 결혼 연령 상승, 맞벌이 부부 증가 등 다양하다고 한다.
노쇠한 겨울과 양지쪽으로 숨어드는 봄의 전령이 안반뒤지기하는 날에 아침을 먹으며 TV를 켜니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시답잖게 여기며 채널을 돌리려는 순간, 40대 주부와 두 노인이 한 집에서 생활하는 장면이 나오며 해설자의 멘트가 두 귀를 쫑긋하게 한다. 두 노인은 각각 주부의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로써 한 집에서 40대 부부, 아들, 딸까지 여섯 식구가 오순도순 사는 내용으로 우리에게 많을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TV에 출연한 주부는 무남독녀로써 결혼 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수시로 반찬을 만들어 홀로 계신 친정아버지께 갖다 드렸단다. 당시 시댁에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모두 계셨는데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1년 후 시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친정아버지까지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집에는 방이 세 개뿐인지라 당초 아들이 쓰던 방을 친정아버지께 양보하였으니 현재는 방 하나에 부부와 두 자녀, 나머지 두 방에는 각각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가 기거한단다.
누구나 늙은 부모 모시기를 꺼려하는 오늘날에 시아버지와 친정아버지를 같이 모시기가 어디 쉬운 일이랴. 더구나 한 방에서 자신들과 두 자녀까지 4명이 생활하면서도 두 어르신들이 각각 다른 방을 쓰도록 배려하는 40대 부부의 웅숭깊은 심성이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자 가슴 뭉클한 감동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만약 그 주부의 친정아버지께서 자식을 둘 이상 두었더라면 다른 자녀가 모셨을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우수가 지나 날씨가 제법 풀린 날에 모친께서 운명하셨다. 1931년 9월(음력)생이시니 세상에 나셔서 90년 6개월을 사시다 가신 것이다. 5년 전부터 제대로 걷지를 못해 가끔씩 병원에 갈 때마다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었는데 작년 가을부터는 식사를 잘 못하시며 건강이 부쩍 나빠지셨다. 그러니 눈보라가 몰아치고 강추위가 계속되던 겨울을 나며 “제발 어머님께서 이 겨울만큼은 넘기셔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간절했었다. 그런데 우수가 지난날에야 가시는 걸 보니 당신께서도 그런 자식의 뜻을 아셨던 모양이다.
장례식장이 결정되고 외지에 사는 형제자매 가족들까지 모두 모였다. 그런데 하필 아침부터 필자의 몸에 열이 나며 감기 증상이 있더니 오후까지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종합병원 간호사로 있는 딸아이가 걱정을 하며 ‘코로나19 자가진단키트’로 간이검사를 했는데 ‘오미크론’ 양성반응이 나왔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모든 장례절차를 동생들에게 맡기고 아내와 함께 부랴부랴 보건소로 향하여 최종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이튿날, 휴대폰에 양성반응이라는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는데 거기에는 7일간 재택치료를 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장남이면서도 어머님의 장례기간 동안 아내와 함께 장례식장이 아닌 집에 틀어 박혀 마음고생을 해야 했다. 다행히 다른 형제자매들이 있어 3일간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어머님의 자식이 필자 한 명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바로 위 누이 부부도 무남독녀를 두었기에 남의 일이 아니었으며 한 자녀 시대의 고충이 가슴에 와 닿았다.
오늘날 ‘인구가 곧 국가경쟁력’이라 했듯이 국가의 인구가 줄지 않으려면 상식적으로 한 쌍의 부부가 최소한 둘 이상의 자녀를 낳아야 한다. 아울러 그것은 개인의 가계(家系) 유지와도 관계가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만약 한 가정에 한 자녀 시대가 계속 이어진다면 남편 입장에서 부모와 장인 장모, 아내 입장에서는 시부모와 친정부모를 같이 모실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가정은 물론 우리 사회의 전통질서에도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이제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 이상 낳아 잘 기르자.”라는 표어라도 등장해야 할 모양이다. 앞으로 과연 우리나라 가임 여성 1명당 출산율이 2.0 이상으로 회복될 수 있을까? 하기는 누구나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