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불효

작성일 : 2025-11-10 09:35 수정일 : 2025-11-10 09:37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긴 연휴로 오랜만에 오솔길로 산책을 나선다. 한때는 수시로 다녔던 길이건만, 어느 순간부터 잊힌 곳이 되었다. 산 풍경은 여전하건만, 나라는 존재만 빠져 있을 뿐이었다. 가을볕과 익숙했던 숲길,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하늘 풍경까지 그대로다. 발등에 닿는 풀의 감촉까지도 반가워 안부라도 물고 싶다, 자연은 흔들림 없이 의젓하다. 유유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걷고 있었다. 활기찼던 푸른 잎들은 가을로 가는 길을 따르기 위해 갈색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막힘없이 이어지는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이 살포시 웃고 있다. 작은 웃음 같아 눈을 땔 수 없다. 하나라도 빠지면 서운해 할 것 같아 일일이 눈을 맞춘다. 이 가을도 여차하면 못 만날 뻔했다. 고운 모습에 고마운 마음이 절로 나온다. 길게 이어지는 안부 인사에 진한 우정을 나눈 기분이다. 젊은 날은 힘이 넘쳐나니 씽씽 달리다 보니 이런 여유도 모르고 다녔던 길이다. 어쩌면 사람살이도 이처럼 이어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사람 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라고 하더니 맞다. 내 부모님이 살아온 길 내가 걷고 또 내 자녀들이 걷게 되리라. 잦은 비로 우중충한 하늘 때문인지 살아나온 세월이 써온 일기장을 보는 듯 반성할 일투성이다. 젊은 날 잘못했던 순간들을 따져 묻는 듯 맞닥뜨릴 때가 있다. 하늘을 울러 울수록 부끄러운 일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도 더 많을 것 같아 두려움까지 든다. 나에게 살아서 나온 일은 다 부끄러운 일투성이다.

자녀들이 가까운 곳에 살다 보니 자주 볼 수 있어 좋을 때도 많았다. 먹이고 싶을 때 함께 나눌 수 있어 흡족했다. 가정을 이룬 자녀들이 모여 음식을 먹는 모습에 내 만족감이 더 크다. 세상사 좋은 것만 느끼며 살면 좋으련만, 낮과 밤의 위치다. 자녀들도 자주 보다 보니 때론 서운한 감정도 덤으로 온다. 자녀들을 통해 지난날의 나의 잘못을 소환해 보는 것 같아 참회하는 마음이다.

아들의 말투에서 과거 내 모습을 느낄 때가 많다. 나 역시 부모님께 저런 모습으로 했음이 분명한데 그때 내 부모님의 마음은 이러했겠구나 싶다.

고백하건대 남들과의 관계에는 너그러웠으나, 부모님께는 순종적인 자녀가 아니었다. 부모님의 귀한 마음도 작은 내 마음의 크기에 맞지 않으면 불편한 표정을 들러서 냈을 것이다. 가끔 어머니가 너는 웃어라, 꼭 화난 사람 같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부드럽게 표현했다. 자녀의 마음 다치지 않게 그리 말했을 것 같다. 자녀들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르내리고 있다.

결혼했을 당시에도 그 성품이 어디 갔을까. 무작정 뭔가 못마땅하면 순종하는 마음보다 불평스운 표정을 드러냈을 것이다. 자식으로만 살았을 때는 몰랐다. 부모님이 자식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가슴을 얼마나 폈다가 조이고 사는지.

그럴 때마다 시어머니 마음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자녀들 결혼시키기 전에는 몰랐다. 내 자녀들 결혼만 하면 만사 끝이려니 자만했다. 며느리를 지켜보니 말 못 했을 부모 마음도 확대경처럼 보인다. 인제야 시어머니의 마음이 헤아려진다. 바로 가르치려고 내게 옳은 말을 꺼냈을 때 당신 마음으로는 수없이 고민한 후 내게 했으련만, 나는 그것이 괜한 잔소리쯤으로 받아 드렸던 것 같다.

분가한 자녀가 가업을 이어받겠다며 함께 생활하다 보니 내 젊은 날의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나 타이를 자신도 없다. 그때는 내 생각이 옳고 현실적인 생각이라 여겼고, 부모님의 생활 방식은 낡은 방식이라 여기며 내 뜻을 주장했을 것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나만 알고 살던 어리석은 시간들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만이 전부라고 여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비로 나였다. 내 몸 하나 편하고 내 목에 부드러운 음식 넘기는 것을 큰 행복으로 알고 살았다. 남의 눈에 티는 보면서 제 눈의 들보를 왜 못 보았을까. 하긴 안다고 했을지라도 공작새처럼 잘난 맛에 취해 살았으니 관심 밖으로 여겼겠지. 부모가 겸손하지 못하니 어디에서 그 자녀들이 공손하고 존중해야 함을 배웠겠는가. 엉덩이에 뿔이 난 모습만 심어주지 않았을까. 이제 살아보니 늙어 죽을 때까지 부모 마음은 알 수가 없을 것 같다.

부모님이 옆에 계신다면 나의 불효를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러나 내 불효를 받아 줄 부모님이 옆에 계시지 않는다. 젊은 날 9남매의 자녀들이 시어머니를 모시고자 다녀가시라고 해도 시어머니는 당신 몸 지닌 곳이 제일 편하다며 집 떠나는 일을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철없는 나는 그때 시어머니가 야속했다. 한 번쯤 다녀오시면 얼마나 좋을까. 안 계시면 끼니마다 식사 준비를 하지 않을 텐데.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부모님 식사를 준비하지 않고 사는 부부들이었다. 그렇다고 엽렵하게 제대로 된 밥상을 준비하지도 않았으면서도 그게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시건방지고 경고 망동한 생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준비 없이 차려주는 밥상에 진저리가 났는지 어느 땐 애야 너는 장에도 가지 않는 거냐? 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뜻인 줄도 모르고 왜 장엘 가라고 하는지. 생선을 사는 일이 싫어 일부러 피하고 싶었다. 비린 생선을 손으로 만져야 할 것 같은 얄팍한 계산에서 짐짓 눈치 없는 척 굴었다. 부모 되어보니 먹어야 맛이었겠는가! 자녀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으리라. 스스로 베풀었던 효심이 없었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 말 없다. 그럼에도 염치없게 은근히 바랐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눈에 고물고물한 손자들이 보고 싶어 아들 집을 찾았다. 식사 때가 되었음에도 아들 부부는 어린 손자들만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집에 있는 남편 생각에 불끈 일어나 나서건만, 금방 식사준비할 거니 없는 찬이지만 드시고 가라는 말 한마디 없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섭섭했다. 요즘 시대가 어린아이들 위주의 세상임을 알면서도 그냥 노여웠다. 그걸 말하는 내 자신이 시대의 흐름을 모르는 시어머니임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옹졸한 마음이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집에 와서 먹으면 될 일이란다. 자신을 불러내 식당에서 한 그릇 먹고 오면 될 것을 시어머니 옴파는 것이냐며 핀잔이다. 당연한 말이다. 시대의 흐름을 거슬리는 심술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이처럼 나는 며느리, 시어머니 노릇도 못했다. 꼭 들판에 알곡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쭉정이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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