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12-08 09:25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꼭 장날이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있어 장날을 기다렸다. 대목장을 넘긴 뒷장이고 보니 장날을 착각했나 싶게 한가하다. 닫혀 있는 문이 대부분이고 장터에는 몇 군데만 짐을 펼치고 있다. 파장처럼 한산하다. 명절을 앞둔 대목장은 사람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무엇을 살래야 사람에 치여 물건을 제대로 살 수가 없던 장이었다. 그날은 자녀들과 함께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아 평소의 서너 배의 인파들로 붐볐다. 명절 대목이라 한 집에서 식구대로 따라나섰으니 한정된 공간은 밀집될 수밖에 없다. 그러던 대목장을 지난 후 장은 장이 아니었다. 굳이 장터에 나선 이유는 천정에서 난리굿을 치는 쥐 때문에 찐득이를 사고자 장을 기다렸다. 장터 입구의 채소 가게 고부지간이 보는 가게는 채소를 펼쳐 놓고 있다. 며느리는 없고 어르신만 느긋한 표정이다. 평소에 절반도 아닌 채소 다발이 자리하고 있다. 범위도 넓지가 않다. 시어머니는 짜놓은 걸레처럼 주름진 얼굴로 빨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다. 바쁠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팔면 고맙고 안 팔리면 얼마나 되지 않으니 걱정 없다는 여유가 느껴진다. 눈빛부터 여유롭다. 사람들을 바라보는 강도가 해 질 녁 가을볕처럼 희미하다. 장인가 의문이었지만 맞긴 하다. 장꾼들이 장에 다니는 일이 보통의 노동이 아닐 거라 여겼다. 하루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건만, 하루 쉬는 일이 더 힘들다고 했다. 힘들어도 장에 앉아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했다. 채소 가게 고부지간은 분명 며느리는 오늘만은 쉬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그럼 “너는 쉬어라, 집에 있으면 뭐 하겠냐 쉬더라도 나는 장터 의자에 앉아 있다 오마,” 하고 오셨을 것 같다. 기물 가게 수염 아저씨도 나와 있다. 수염 아저씨는 젊은 날부터 수염을 길었다. 장터에 기물 가게가 두 집인데 수염 아저씨네로 통한다. 수염아저씨는 아들 하나를 데리고 재혼했다. 재혼한 부인은 수염 아저씨보다 연세가 훨씬 더 많다. 수염 아저씨가 아들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재혼한 부부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쏠려 말들이 많았다. 아들 같은 젊은 사람을 남부끄럽게 사느냐고 비난이 드셌다. 그 말에 아주머니는 나도 평생에 남들처럼 정상적인 남자하고 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당신들이 내 썩은 속을 어떻게 알아, 속 모르면 입 닥쳐” 했을 때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아주머니의 전남편은 술주정뱅이로 생활 능력도 없고 무능해 아주머니의 애간장을 퍽 썩혔다. 그런 탓에 당신도 자녀들 다 장성해 보냈으니 나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남자가 데리고 온 손주 같은 아들도 애지중지 뒷수발해 학교 보냈다. 젊은 남자는 재혼한 아내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수염을 추가했다. 처음에만 나이 차이 때문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지만, 성실하게 잘 살아 소문을 잠재웠다. 때론 장터에서 남자가 머슴이냐고 투정했다고 했다. 아내가 나이 들어 힘도 기억도, 희미했고 합병증으로 몸을 못 썼다. 젊은 남자가 매일 장마다 물건을 펼치고 거두고 했다. 그래도 아내의 병수발은 남편이 정성껏 살뜰하게 보살폈으나 먼 길로 가셨다. 인제는 수염 아저씨만이 장터의 토주 대감이 되었다. 나는 아내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당신의 한을 이루고자 대신 꼬마도 키웠다. 당신의 선택에 사람들의 따가운 이목도 무시했다. 장성한 자녀들과 인생을 따로 정리할 수 있는 결정도 단호하게 해냈다. 그 당시 시대의 편견을 뛰어넘은 의지가 용기처럼 보였다. 젊은 남편과 의상을 맞추기 위해 과한 옷차림이 좀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그 또한 당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인생 2막을 과감하게 펼쳐낸 여인으로 남았다. 시대를 뛰어 넘은 신여성으로 예술 활동과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당시 사회 전통적 가치관에 도전했던 윤심덕, 나혜석처럼 문화예술에 업적은 없지만, 구태의연한 시대의 올가미에 도전하는 정신세계는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다.
텅 빈 장터 중앙에 만물 상회는 문이 닫혀 있다. 꼭 사야 하는 것인데 나만 간절했지. 어르신은 오늘은 집에서 쉬기로 마음을 먹었나 싶다. 만물상회 어르신은 구십이 넘었다. 그곳은 가짓수가 만 가지는 될 것 같다. 심지어는 양잿물까지 있다. 저 위험물은 취급을 잘해야 할 텐데 하는 염려까지 든다. 어르신은 물건도 두서 있게 정리 정돈해 파는 것은 아니다. 손님들이 필요한 것은 찾아내 사야 한다. 내가 잠깐 서 있는 동안에도 찾아온 손님이 많다. 무엇을 찾지만, 두 분이 서로 찾아보라고 다그친다. 할 수 없이 내가 찾아드렸더니 손님들이 내가 주인인 줄 알고 나더러 찾아 달란다. 쥔장도 거스름도 맞느냐고 내게 묻는다. 어르신은 가격만 말해주고 받는다. 잔돈을 거슬러 주실 때도 헛갈리며 받을 가격을 내주기도 했다. 다시 계산해 드리면 고맙다고 웃는다. 콧물도 간수 못해 손등으로 훔친다. 젊은 날 아내를 먼저 보내고 재혼은 복잡해 미루다 보니 이렇게까지 연세가 들었다고 하신다. 이렇게 사는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편해서 좋다고 하신다. 행동도 계산도 더디지만, 집에 혼자 있으면 적적하니 사람 만나기 위해 장 따라다닌다고 했다. 돈을 벌어 누구를 책임지기 위해서보다 당신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서 장터를 지키는 분이다. 오일장 장꾼들은 연세가 지긋하다. 더러 젊은 사람들도 있긴 하다.
장꾼들은 돈벌이가 목적이기보다 살아온 생활이기에 때가 되면 그 자리를 가야만이 당신의 존재감이 있다. 다리에 힘이 있을 때까지는 사수하고자 하는 직업적 사명감이 뚜렷하시다. 문이 닫혀 있어 아쉬운 마음에 동네로 들어선다. 추석 연휴가 긴 탓에 노모만 집에 두고 떠나기 아쉬운 자녀들이 며칠 더 머무니 조용하던 골목에 젊은 사람들이 오르내린다. 모처럼 사람 소리가 들려 생기가 넘쳤다. 내가 들어서니 노모를 홀로 두고 가는 길이 마음이 안 놓인 지 젊은 아들은 고샅마다 일일이 다니며 어르신들께 인사를 건넨다. 이제 내일부터는 출근 때문에 올라가야 할 것 같다며 잘 지내시라며 울타리 너머로 인사를 건넨다. 끝으로 당신 엄마가 혼자 계시니 잘 살펴달라고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연휴가 마무리되고 정상적인 일상이 시작되면 우리 마을도 장터처럼 고요한 정적이 시작될 것이다. 아니, 이 비가 그치면 가을 추수 준비로 어르신들의 무거운 발걸음이 논으로 향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