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김장날

작성일 : 2026-02-09 09:24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나이가 쌓여갈수록 몸 안의 잔병과 꾀만 늘어가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몸을 덜 움직이고 살까 하는 궁리만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식구 수가 주니 주방에서 조물조물하는 일마저 요리조리 피하게 된다. 버리는 음식이 아까워 조금씩만 외치던 손이 나도 몰래 커져 버렸다. 예전에는 손이 간사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노심초사했던 적도 있다. 마을에서 어른들과 어울려 사려면 손 큰 여인이 인심 넉넉한 사람대접을 받았다. 그런 점에 또래보다 약한 손에 속할까 억지로라도 손 큰 여인이 되고자 마음을 다잡았다. 요즘은 음식 만드는 일이 번거로워 자연스레 손이 커져 버렸다. 식구들이야 맛이 있게 먹건 말건 한 끼니라도 더 먹을 수 있게 조금 더 하다 보니 젊은 날 원하던 큰 손이 되었다. 밥도 그렇다. 조금씩 해 먹으면 좋으련만 매 끼니 새 밥을 짓는 것보다, 한 번 한 밥으로 끼니를 늘리기 작전을 펼친다. 알뜰살뜰 가족들 입맛 살피고 건강 지키려고 했던 마음은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편하게 살고자 길든 몸이 되어 버린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겨울 김장은 더없이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증세가 있는 내게는 좋은 여건이 된다. 김장감치를 챙겨 두는 일과 기름이 잘잘 흐르는 우리 지역 쌀을 챙겨두는 일처럼 마음 든든한 일이 없다. 실은 김장김치가 먹다가 떨어지거나, 쌀이 떨어져 곤욕을 치른 적은 없다. 이 또한 부질없는 집착일 뿐이다.

지금까지 김장을 손수 해본 적도 없다. 마음이 후덕한 형님들이 곁에 있어 김장하는 날이면 도와 드리고 먹을 양보다 많이 받아오곤 했다. 맛있는 김장을 하려고 좋은 식재료를 고르기 위해 발품을 팔아본 적도 없다.

그것만도 나는 여태껏 마음 편하게 살아온 편이다. 모두가 형님 덕이다. 작년 김장도 다른 해보다 덜 거들고 우리가 먹을 양의 배분 받았다. 우거지까지 붙여 김치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다. 내 집 쌀독과 김장독을 채웠다고 모른 척 사는 일은 훗날 후회로 남을 수 있다.

단체 활동으로 겨울 김장을 거들어야 할 일에 나섰다. 그 일 역시 김장 재료들을 준비해 두고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면 몸으로 가서 봉사만 하는 일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양념을 준비하는 팀으로 차출되었다. 김장을 비비는 일은 옆 사람을 따라서만 움직이는 일이지만, 양념을 준비하는 팀은 살림에 관록이 있는 회원들만이 가능한 일로 여겼다. 어찌하다 내가 깍두기로 끼게 된 것이다. 집채만 한 왕대야에 새우젓과 생새우를 갈고, 김장 속 재료, 갖은 채소를 우려낸 육수, 어마한 양의 고춧가루가 부어져 있다. 양념들이 따로 놀지 않도록 골고루 섞어야 하는 일이 남았다. 왕대야의 크기는 보통이 40리터, 60리터 무려 100리터 왕대야이다. 그 빈 왕대야에 누군가 앉아 있더라도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 대야에 양념을 담았다. 거의 두 뼘 정도 남겨진 지점까지 양념이 부어졌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20명이 넘었지만, 육십 대부터 70대가 대부분이었다. 허리, 다리, 팔이 부실하다며 김치 비비는 일에 자리를 지켰다. 왕대야에 가득 채워진 양념을 섞는 일은 누군가가 해야만 될 것 같다. 그 일이 가장 힘에 겨운 일이 될 것 같았다. 긴 나무 주걱과 잘 깎여진 몽둥이만이 누군가 버무려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 자리에는 누구도 없다. 아니, 못 본 척한다. 절임 배추는 임시 거치대에 바짝 엎드려 있다. 회원들은 고무장갑이 흘러내리지 않게 소매 끝자락에 테이프까지 감았다. 비닐 앞치마, 스카프까지 한 스무 명 정도가 양념이 올라오기만 기다린다. 마치 우주 정거장에 가기 위한 차림 같다. 절인 배추는 곱게 양념 칠을 거쳐 김장 박스에 옮겨질 것이다. 자리마다 준비를 마친 회원들이 일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 역시 식재료들을 준비했으니 김장 비비는 줄에 서 있으면 그만이다. 웬일인지 한쪽 양심에서는 나를 충동질한다. ‘그래도 너는 여태껏 형님들 덕분에 편하게 김장을 얻어먹은 사람이 아닌가. 이럴 때라도 비축된 힘을 써야지. 무슨 소리야, 나도 힘쓸 나이는 지났지. 편하게 산 것은 많은 사람 중 나만 그러겠어. 분명 나보다 더 편하게 얻어먹는 사람도 있어. 내가 해야 한다고 순서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뭘. 나도 저 많은 양을 섞고 나면 허리며 다리가 아파 며칠 동안 물리치료 받으러 다닌단 말이야. 나 혼자 힘든 일 했다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고 싫어! 나도 가만히 슬쩍 비비는 김장 조에 끼어 있을 거야. 양심이 하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나는 슬금슬금 눈동자를 돌리며 눈치를 살핀다. 혹시나 연로한 어른들 눈에 띌까 싶어 고개도 푹 숙이고 있다. 그런데 양념 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내 귀에 크게 들린다. 그러나 왕대야 부근에는 한 사람도 접근하는 사람이 안 보인다. 나는 양심에 떠밀려 저벅저벅 그쪽으로 향했다. 그 사이 누군가 올까 눈치를 살피지만, 결국 그 긴 주걱을 쥐고 나는 왕대야 앞에 섰다. 장군처럼. “이순신 장군의 유언처럼 내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말라!” 대신에 죽으면 썩어 가루가 될 삭신 필요할 때 활발하게 써 먹어야 억울하지 않지하는 마음으로. 그 주걱은 산처럼 쌓인 양념을 감당하기에 약했다. 차라리 장군이 싸움터에서 휘두르는 칼처럼 곁에 우두 거니 서 있는 몽둥이를 휘어잡았다. 나는 그날 그 많은 양의 양념을 노 젓듯이 온 힘을 다해 섞었다. 무사히 마치고도 양푼에 섞인 양념도 담았다. 그 후 김장 비비는 팀에 먹이를 대듯이 빈틈없이 거치대에 나눠 드렸다. 붉은 양념은 손길에 의해 곱게 배추 속속들이 버무려졌다. 곱게 새색시처럼 화려한 화장을 마친 김장 배추는 다소곳하게 아이스박스에 차곡차곡 담겼다. 그중 양념이 덜된 배추는 마른버짐이 핀 여인의 얼굴처럼 초라해 보였다. 다시 되돌려 화사하게 했다.

백 박스가 넘는 김장 박스는 김장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가정에 배달되었다. 겨울 동안 허전한 밥상 위에서 주인 역할을 단단히 하리라 믿는다. 단순히 김장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이웃들이 혼자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따뜻한 안부 인사로 체온을 전달 소중한 역할을 감당했으리라 믿는다. 그 후 부상병처럼 나는 정형외과로 출근하듯 물리치료를 받아야 했다.

 
#김미 #수필가 #김장날 #미래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