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사라진 엄동설한(嚴冬雪寒)

작성일 : 2026-03-09 09:36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박 철 한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순전히 식물의 광합성 덕택으로 살아간다. 식물의 이파리에서 이뤄지는 광합성으로 동물들의 먹을 것(탄수화물)과 숨 쉴 것(산소)까지 생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합성이란 게 이산화탄소와 물과 햇빛의 상호작용이니, 결국 이산화탄소가 인간을 먹여 살리는 셈이다. 그만큼 이산화탄소는 지구의 생태계에서 중요하다. 지만 현대 문명을 유지하는 화석연료들이 탄소화합물인 까닭에,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배출되어 온실효과가 상승하며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더구나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는 숲마저 급속도로 줄고 있단다. 이는 인간이 여태껏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며 자연환경을 훼손한 탓이리라. 지구가 무덥다고 아우성이니 인류가 힘을 모아 식혀야지 어쩌랴.

그렇더라도 여기에서 기후 온난화 문제를 제기하면 자칫 시큰둥할 수 있으리라. 그동안 매스컴 등을 통해 기후 온난화에 따른 여러 악영향들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가 지구의 자전 속도까지 변화시킬 수도 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구는 자전과 공전을 병행하므로 하루 24시간은 지구 자전주기보다 236초가 더 긴 양 남중 주기다. 그런데 지구 환경의 영향으로 자전이 불규칙함에 따라 양 남중 주기도 불규칙하, 수백일 만에 표준시(UTC)1초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래서 윤초는 오늘날의 표준시 12시 정각과 태양 남중 시각의 오차가 1초미만이 되도록, 전 세계적으로 같은 시각에 일제히 1초를 더하거나 빼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만약 기후 온난화 심화로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여 해저와 바닷물 사이의 마찰력이 커지면, 지구의 자전 속도가 변할 수도 있단다. 지구의 자전 속도가 변한다는 것은 하루의 시간도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에 심각한 수준을 넘어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산업혁명 이전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인간은 절대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킬 수 없어.”라고 우겼으리라. 하지만 그로부터 10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인간에 의해 지구의 기후가 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혹시인간은 절대 지구의 자전속도를 변화시킬 수 없어.”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계속 지구의 환경이 악화되면서 100여년이 또 지나면 자전 속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곧 지구의 자연환경 보전은 지구 자전의 안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사계절이 뚜렷했던 이 땅의 현실에서도 기후 온난화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아직 입춘도 지나지 않았으니 동장군이 기승이련만 한봄이 쳐들어와서는 자그마치 달장근이나 진을 치고 있다. 우군(友軍) 삼한사온(三寒四溫)도 어디로 쫓겨났는지 온대간대 없다. 밖으로 나섰더니 거리에는 윗도리를 벗어 어깨에 걸치고 활보하는 사람들과 때론 반소매 차림을 한 사람들도 눈에 띤다. 하지만 이때쯤이면 두터운 외투 차림을 했어야 하지 않으랴. 그랬더라면 아마 머리엔 털모자를 쓰고 몸을 웅크린 채 입김도 하얗게 내뿜었으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동지섣달에 반소매 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는 모습은 생소하기 이를 때 없다. 그러니 이제는 한겨울을 엄동설한(嚴冬雪寒)으로 표현하기조차 무색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뿐만이 아니다.

평소 자동차로 30여분 거리의 고향마을에 자주 간다. 그곳에는 뒷산에서 발원하여 마을을 가로지르고 골짜기 논배미들을 자근자근 핥으며 굽이돌아 섬진강으로 이어지는 개울이 있다. 어린 시절 겨울방학이면 신나게 썰매를 타고 놀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개울은 신작로에서 1킬로미터가 넘는 마을 진입로와 나란한데, 2000년 이후로 아직까지 얼음을 본 기억이 없다. 심지어 10여 년 전부터 한겨울이면 일부러 몹시 추운 날을 기다렸다가, 딱히 볼일이 없음에도 마을로 향하곤 했다. 물론 그때마다 속으로는 개울아 제발 이번에는 꽁꽁 얼어 있어다오.”라고 되뇌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막상 마을 진입로에 들어서면 그 기대가 어김없이 무너지곤 한다. 얼음이 꽁꽁 얼어붙은 예전의 모습대신 언제나 물줄기만 졸졸댈 뿐이기 때문이다. 고향마을 개울의 한겨울 풍경을 다시 볼 수 없다니 참으로 씁쓸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우리가 사는 태양계가 속한 우주만 해도 대략 천억 가량의 행성이 있단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구 외에 생명체가 사는 행성을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현재로선 혹 지구가 망하더라도 인간이 이주하여 살 곳이 그 어디에도 없다. 오늘날 지구는 기후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더 나아가 지구 자전에까지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생각만 해도 두렵다. 그나마 국제적으로 탄소배출권(CERs)’제도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등이 운영되고 있어 다행이다. 다만, 그 약속들을 지구촌 어디에서나·누구나 지키고 실천해야 하리라. 그렇다면 앞으로 한겨울에 반소매 차림을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관경을 눈에 담을 일은 결코 없지 않으랴. 아울러 고향마을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엄동설한(嚴冬雪寒)이 다시 환하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낼 날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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