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썩은 귤

작성일 : 2026-03-09 09:42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단맛이 강한 귤을 선물 받았다. 어찌나 맛이 좋든지 이 집 몇 알 저 집 몇 알을 주고 유독 귤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박스째 서늘한 곳에 두었다. 남편은 귤 먹을 시간이 없다며 먹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데 굳이 그걸 나까지 먹을까 싶어 귤 상자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어수선한 광을 정리하려고 보니 귤이 그대로 있다. 어쩐다고 귤을 먹지 않았나. 그러면 다른 사람이라도 먹게 말하던지. 박스를 열어보니 그 맛났던 귤이 상해있다. 한자리에 친밀하게 붙어있는 곳에 귤이 고스란히 못 먹게 되었다. 상한 귤을 들어내는데 어쩌면 사이좋게 붙어있는 곳이 상할까. 고개가 갸우뚱했다. 짓무른 부분이 허옇다. 조금 덜 된 곳도 있지만 먹어서는 안 된다고 들었다. 상처가 이제 시작된 곳, 점처럼 흔적이 찍힌 곳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육안으로 확인된다. 사람도 가까운 사람과 서로 마음 다치는 일이 흔했다. 멀리 있는 사람과는 마음 다칠 일도 없듯 관계의 법칙을 보는 것 같다. 가족끼리 화합도 잘하지만 가족이라 마음의 상처도 수시로 받는다. 함께 있다 보니 애정이 깊어 상처도 더 받게 되는 모양이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우리 마을에 노인 일자리 때문에 대소동이 생겼다. 모든 일에 있어 다 좋은 부분만 있을 수 없듯 노인 일자리가 어르신들에게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도 선물한다. 경제적 보탬도 준다. 사회적 일자리 참여로 자긍심도 생긴다. 신체적인 건강 증진을 주는 것은 더없이 좋은 효과이다. 옥에 티라면 선발의 형평성 문제로 마음 다치는 일이 번번이 생겼다. 일자리는 정해져 있는데 하고자 하는 사람은 더 있어 일자리에 대한 분쟁도 있다. 예전에 했던 사람이 갑자기 탈락이 되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서는 데 문제가 생겼다. 누구도 깊이 관여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두 분은 무슨 연유로 그런지 사이가 얼마 전부터 서로 등져 있다. 이 사람이 앉은 곳에 서로 얼굴도 보지 않으려고 피했다. 마을 사람들 역시 두 사람 눈치 살피느라, 말도 자유롭게 못했다. 괜히 불편한 쪽 사람과 친밀하게 지낸다고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회관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먹거리를 가져오면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은 부를 수도 없다. 음식이 넘쳐나도 부르지 않는다. 그 두 사람이 마을 회관에서 한 사람은 청소, 한 사람은 식사제공 일을 한다. 일자리가 구별되지 않아 일하기 손쉬운 청소만 하겠다고 매달렸다. 서로 간에 밥은 하지 않고 청소만 하겠다고 해 문제가 생겼다. 일자리 제공 측에서도 서로 상의해 해결하라는데 그것이 해결되지 않음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렇다고 마을 회의에서 누가 쉬운 일을 하고 누구는 복잡한 일을 하라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그로 인해 마을에서는 작은 바람이 몰아쳤다. 청소하는 일과 공동 식사를 제공했던 두 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갑장이라며 더없이 다정한 사이였다. 그렇게 좋았던 시절에는 오가며 챙겨주던 일은 싹 지워졌다. 전에는 먹을 것이 있으면 주거니 받거니 알뜰하게 챙겼다. 젊은 시절 자녀 학교 보낼 때 바빠, 소풍을 못 따라가면 대신 그 집 아이들을 불러 일부러 챙겨 먹였던 사이였다. 미쳐 도시락도 못 챙겨 마음이 아파 있을 때 걱정하지 말라고 두 집 아이들 점심까지 준비했다. 세상에 더 이상 고마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이들만 맡겼던 한사람은 그날 장사하고 이익금은 눈 딱 감고 아이들 먹거리를 사 나누었다. 세상에 남남 지간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갑작스런 소나기로 마당에 펼쳐놓은 알곡이 비몰이 당하게 생겼을 때 득달로 달려가 숨도 못 쉬고 돕던 사이였다. 내 일처럼 비에 젖어 가면서 몸이 부서져라 일손을 거들던 이웃이 아니었던가. 위아랫집에 산다는 이유로 큰비가 몰아치면 아랫집에서는 윗집에서 쏟아지는 빗물을 다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며 두 눈을 꼭 감고 살아오던 이웃이었거늘 어쩌자고 이런 삼팔선이 쳐졌을까. 무엇이 쌓여 그랬을까. 왕년에 했던 축의금과 부의금도 눈을 부라리며 죽일 듯 따진다. 내가 얼마를 더 했는데, 너는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느냐. 서로 말은 안 하더라도 부의금 빚은 갚아야 하지 않느냐며 옆 사람에게 하소연한다. 그런 순간에도 연락병은 있게 마련 아니던가. 그 소리를 듣고 내가 더 찾아오게 생겼다고 하더란다. 누구 결혼식 때는 얼마 했고, 나는 얼마를 했다며 오래된 장부까지 들춰보며 따지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끝이 없는 실랑이가 이어졌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자리에 없으면 한 사람 험담은 끝이 없었다. 과거에 함께 동네 사람 흉허물을 나누었던 묵혔던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 소리를 듣다가 누군가는 그러는 당신은 그 순간 입 다물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말할 수 없다. 괜히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두 사람 중 하소연하는 사람은 그 순간에 듣고만 있어도 동지 같은 느낌이 드는 모양이다. 두 사람 싸움에 등 터지는 사람은 마을 사람들이다. 서로 일자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노인 일자리는 무효 될 수 있다고 했다. 작년에는 따뜻한 밥을 마을 회관에서 제공받으니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런데 이게 뭐람. 누가 잘했고 못 했고 두 사람 문제다. 주민으로서 입장은 어떻게든 따뜻한 점심을 정성껏 준비해 가족처럼 주거니 받거니 밥을 먹고 싶다.

마을 양지쪽 담장 곁에는 머릿결이 부스스하지만, 눈빛만은 타들어 가는 여전사 몇 사람이 모였다. 그들은 야위고 쪼글쪼글한 팔을 내저으며 이러쿵저러쿵 집어치워라. 좋게 살아도 우리가 팔십을 넘어 몇 년이나 더 힘있게 살겠냐. 이 차시에 말을 섞고 지내라. 둘이 서로 으르렁거리면 누가 밥이라고 먹으러 오겠냐. 결국 청소하는 사람, 밥하는 사람 두 사람이 먹을 것 아니냐. 한마디씩 말을 하자 두 사람 중 바늘구멍이라도 들어가는 사람이 알았다고 신호를 준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따뜻한 밥을 먹기로 합의했다. 부패한 귤처럼 상처 있는 부위가 다 덜어진 것일까. 버린 귤이 그저 아깝기만 했지만, 두 사람 문제는 누군가의 힘으로 응어리를 들어내고 나니 시원하고 말끔한 기분이 들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부패한 곳을 도려낼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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