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6-04-13 09:12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2주 전 돌 갓 넘긴 둘째 손주를 잠깐 봐 달라고 며느리로부터 부탁받았다. 잊음이 많은 관계로 탁상 달력에 동그라미와 이유를 적었다. 그 말에 포대기는 꼭 가져와라 당부했다. 그 일이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큰손주가 병설 유치원에 면접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아이 둘을 데리고 잠깐씩 들렀다가 가는 일은 많았다. 할머니와 단둘이 보낸 시간은 없었다. 오롯이 귀여운 손주가 내 차지가 된다는 것에 설레는 마음까지 들었다. 잠깐이라는 데 둘째는 순하기도 했다. 여태껏 아이를 맡겨본 적이 없었다. 그 소리가 좋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잠깐이지만 내심 둘째 손주를 원 없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그 솜처럼 부드러운 볼도 실컷 만져보고, 얼굴도 마음껏 비벼 봐야지 했다. 다행히 둘째가 업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던 소리도 사돈에게 들었다. 포대기를 가져오면 업고 마을도 한 바퀴 돌고, 마을 회관에도 들러 손주 자랑도 할까. 아니, 그건 조심해야 할 일이다. 아직 자녀가 결혼하지 않는 집안 형님도 계시니까. 괜히 더 젊은 내가 손주를 들러업고 어르고 달래면 속이 상할 수도 있겠지. 며느리가 부탁했던 뒷날부터 달력이 눈에 띌 때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일 년 전도 둘째를 분만하기 위해 산부인과에 가면서 큰손주를 부탁했다. 그때도 새벽 시간에 잠깐 가 아침을 먹여 유치원에 보내는 일이었다. 부탁한 대로 아이를 씻겨 준비해 둔 옷을 입혀 유치원에 보냈다. 유치원에 다녀올 시간에는 서울에서 이모가 비행기로 와 산후조리원 생활 마칠 때까지 보게 될 것이라 했다. 나도 짧은 시간은 키울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굳이 서울에 사는 이모까지 불렀나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온종일 손주를 위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마도 나는 못할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오히려 나를 위한 좋은 선택인지도 모르겠다며 마음을 정리했다. 손주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이 되니 자꾸 시계를 쳐다보았다. 혹시 이모가 못 오면 내가 데리러 가야지 싶었다. 그런 일은 없었다. 손주 이모는 정확하게 왔고, 외가로 데리고 갔다고 했다. 허전했다. 할머니 집이 지척인데 더 멀리 있는 외가까지 보냈다니, 아들에게 넌지시 말했다. 나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아들은 그 말에 엄마가 어떻게 봐요. 아이가 보통 활력이 넘치는 것이 아닌 데 엄마는 금방 못 본다고 할 걸요. 외가는 식구들이 많아 나눠서 보면 충분해요. 라고 했다.
또 엄마가 아이 식단까지 짜 먹일 수 있을까. 그 소리에는 기분이 약간 언짢았다. 하면 하는 거지. 여태껏 가족들 건사하며 살아왔는데 싶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른데 아이들 기르는 일은 아들 부부가 알아서 해야지 하며 불뚝거리는 마음을 다독였다. 아들 내외는 두 아이를 어찌나 감쪽같이 단속 잘해 키우는지 기특하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둘째 손주가 온다고 하는 날 하루 전부터 보일러를 돌리기 시작했다. 혹시 당일에 방이 안 따뜻해지면 며느리가 불안해할 수도 있다. 보일러가 매끄럽게 돌지 않아 서비스도 불렀다. 미리 돌려보길 잘했다. 라며 나의 준비성에 칭찬도 했다. 둘째 손주가 오기로 한 날 하루 전부터 집 안 청소를 깨끗이 했다. 엎드려 청소가 덜 된 곳이 있을까 햇빛이 비치는 곳에 얼룩도 살폈다. 손주들이 오면 청소가 빠진 곳만 손으로 만져 지어미를 불안하게 했다. 웬만한 가구는 모두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행여 손주가 기어 다니다 다칠 수도 있으니까. 손주가 좋아할 달지 않는 과자도 준비해 두었다. 나름대로 만발의 준비가 완료 되었다고 생각하며 오전부터 집에 있었다. 다른 약속도 다 미루었다. 손주 봐야 한다고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유난 떤다고 다른 사람들을 타박했던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손주를 맡는다고 생각하니 온정성이 다 들어갔다. 이래서 손주들이라면 할머니들이 꼬박 가는 모양이다.
드디어 전화가 왔다. 손주가 몇 분 후 도착할 거라고 알았다며 바깥에서 차가 오길 기다렸다. 손주가 차에서 나오는데, 거기에 따른 물건들이 원룸 이삿짐처럼 많은 물건들이 따라왔다. 손주가 할머니에게 오지 않겠다고 울음보를 터트려 그냥 며느리에게 손주를 보라고 했다. 내가 직접 짐꾼처럼 무거운 물건들을 날랐다. 물건의 쓰임도 모르면서 잠깐 다녀가는데 무얼 이렇게 많이 가져오는 거냐고 말도 못 했다. 그냥 필요한 것이겠지 싶었다. 짐을 방 안으로 들여 놓았다. 손주를 받으려고 하니 손주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엄마 품으로만 파고들었다. 이걸 어떡하나 싶었다. 며느리는 시간이 다 되었다며 손주를 얼른 떼어 놓고 문을 닫고 나갔다. 엄마가 안 보이면 할 수 없이 할머니에게로 오겠지, 싶었다. 웬걸, 그때부터 울기 시작하는데 콧물로 물풍선까지 불었다. 포대기로 업을 정신도 없었다. 안 오겠다고 버티는데 그렇게 울음이 긴 아이는 처음이다. 어떻게든 울음만은 그치게 하고자 별수단을 다 피웠다. 손뼉을 치고 노래도 불러 줘도 소용없었다. 고개를 돌려 울었다. 마술사처럼 보자기를 가져와 활짝 펼쳐 보았다. 더 크게 울었다. 할머니가 보자기로 설치니 무서울까. 얼른 치웠다. 마을 회관은커녕 마당 나갈 엄두도 못 했다. 애간장이 탔다. 말이라도 통해야 달래보든지 하지. 할머니 모습도 보지 않겠다고 등을 돌리고 벽을 보고 우는데 나조차 엉엉 울 것 같았다. 등에 땀이 고였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할머니가 앞에서 보이지도 말라는 투다. 한 시간도 넘게 울었다. 이러다 아이가 아프면 어쩌나. 이번 달에는 두 번이나 병원에서 지내다가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울다가 또 병원 신세를 지면 어쩌나 싶었다. 병원에 가게 되면 두 녀석이 한꺼번에 가는 통에 며느리가 이만저만 힘들어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전화했다. 아무래도 울음이 안 그친다고 며느리는 금방 달려왔다.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을 뚝 그친다. 그 요란했던 소요 사태가 절간처럼 고요해진다. 대관절 왜 그렇게 울었을까 싶어 녀석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았다. 이제야 먹을 것이 보이는지 보드라운 과자를 잡으며 이를 드러내 보인다. 어이가 없다. 그래도 예뻐 곁에 있으니 미안했든지 떡잎처럼 연한 손으로 내 입에 과자 부스러기를 넣는다. 조금 전 서운한 생각은 사라지고 나는 입을 헤벌리고 손끝에서 발끝까지 온화한 표정으로 웃는다. 고맙고 황송해서 맛있는 것처럼 과장해 먹으며 절을 꾸뻑한다. 다 사랑스럽다.
온 세상을 이런 포근한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면 누구와도 부딪칠 일 없겠다. 이런 사랑 가득 찬 마음으로 살 수 없을까. 이런 달콤한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없을까. 그러면 세상이 나로 인해 한결 부드러울 텐데. 도대체 이놈의 마음은 칠면조처럼 변화무쌍해서 탈이다. 손주가 가고 나면 나는, 다시 늙은 전사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이다. 나도 내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