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6-05-11 09:35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박 철 한
오늘날에는 날짜 상의 하루가 당연히 0시부터 다음날 0시까지다. 그러나 십이시(자시~해시)를 썼던 예전의 하루는, 자시(23시~01시)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해시(21시~23시)가 끝나는 시점까지였으니 23시부터 다음날 23시까지를 일컬었다. 이는 우리의 전통의례인 제삿날을 정하는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를 들어 5일 23시와 0시 사이에 운명했다면 예전의 기준으로는 6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기제사(忌祭祀)와 관련하여 주자의 가례(家禮) 가운데 제례(祭禮)와 기일(忌日) 조목을 살펴보면, “제삿날 하루 전에 재계(齋戒)하라. 설위하고 제기를 진설하며 제수를 갖춰라. 궐명에 일찍 일어나 채소와 과일 및 술과 제수를 진설하라. 질명에 주인 이하는 의복을 바꾸어 입고 사당에 가서 신주를 모셔 정침으로 나아오라.”라는 대목이 나온단다. 그런데 대체로 ‘궐명’은 축시(01~03시)에 해당하고, ‘질명’은 인시(03~05시)에 해당하니, 그 대목을 해석하여 요약하면 “제삿날 하루 전에 재계하고 제기 진설과 제수를 갖추어, 당일 축시에 제수를 진설하고 인시에 제사를 거행한다.”라는 것이다. 그 뿐이랴. 선친의 제사 축문 ‘세서천역 현고 휘일부림(歲序遷易 顯考 諱日復臨/계절이 바뀌고 세월이 흘러 아버님 돌아가신 날이 다시 돌아오다)’ 대목을 봐도, 운명한 날이 곧 제삿날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토록 명확한 근거가 있음에도 운명한 날의 하루 전날을 제삿날로 잘 못 인식하며, 제사를 초저녁에 지내는 경우가 허다한 현실이란다. 하지만 음식만큼은 하루 전날에 준비해야 할 것이나, 새날이 되기 전인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 혹시 그 문제를 두고 “오늘날은 한 해 여러 번의 제사를 한꺼번에 모아 합동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그까짓 몇 시간 앞당겨 하루 전날에 제사를 지낸다 한들 뭐가 잘 못되었느냐?”라고 따질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합동제사라 할지라도 제사를 거행하는 시간만큼은 지켜야 한다. 그 까닭은 제사가 혼령에게 음식을 차려 정성을 표하는 의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제사 시간은 전통 의식의 ‘귀문이 열리는 시간’ 곧 혼령이 활동을 개시하는 시간과도 무관치 않았으니, 그 시간이 자시(子時)이후인 것이다.
한편 “기제사는 기일 전날에 지내야 한다.”라는 속설은, 주자의 가례 가운데 제례와 기일 조목의 “제삿날 하루 전에 재계(齋戒)하라.”라는 대목에서 야기되었을 수도 있단다. 그러나 ‘재계하다’는 “신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행동을 삼가다.”의 뜻이니, 제삿날 하루 전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제사를 지내는 시간만큼은 오늘날의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새날인 자정 이후여야 할 것이며, 만약 전통을 지키는 차원에서 예전의 십이시를 기준으로 하더라도 23시 이후여야 하리라.
선친(先親)이나 선비(先妣)의 제삿날은 모두 음력기준이다. 그런데 선친의 장례를 치르면서부터 제삿날을 음력으로 할 것인지, 양력(그레고리력)으로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대개 음력을 기준하여 제삿날을 정한다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무엇보다도 양력의 시기성(時期性)이 상대적으로 더 일정하여 장점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기에 가족들과 의논하였고 결국 전통에 따르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마음속에는 “아무리 전통의례라지만 반드시 예전의 방식을 따라야 할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더불어 “전통의례 방식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라는 일부의 주장에 고개를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제삿날을 정하는 기준과 제사를 지내는 시간에 관한 사항이 그렇다. 예를 들어 5일 23시와 0시 사이에 운명했을 경우, 예전 기준으로는 6일일지언정 오늘날에는 당연히 5일로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전통을 고수한답시고 예전 기준을 적용하여 이듬해 같은 달 4일 23시부터 5일로 여기며 제사를 지낸다면, 예전 기준으로 6일에 운명했는데 제사를 5일에 지낸 꼴이니 모순일 것이다. 즉 제삿날을 정할 때는 오늘날의 시간을 기준으로 했으면서, 제사를 지낼 때는 예전의 시간을 적용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운명할 때 예전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였다면 제사도 예전의 시간을 기준으로 지내야 할 것이며, 운명할 때 오늘날의 시간을 기준으로 했다면 제사 또한 오늘날의 시간을 기준으로 지내야 하리라.
결론적으로 운명한 날이 곧 제삿날인지라 만약 5일 23시와 0시 사이에 운명했다면, 이듬해부터 반드시 5일 0시 이후에 제사를 지내야 옳으리라. 당초 제삿날을 오늘날의 시간을 기준으로 정했으므로 제사 또한 오늘날의 시간을 기준으로 지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일에 운명했는데 그 시각이 23시부터 0시 사이가 아니라면 그 시각만큼은 예전 시간을 적용하거나 오늘날의 시간을 적용하거나 똑같은 5일이다. 따라서 되도록 5일 0시 이후에 제사를 지내야 하겠지만, 전통을 지키는 차원에서 4일 23시 이후부터 5일로 여기며 제사를 지낸다 해도 결코 모순은 아닐 것이다. 아울러 운명한 날(제삿날)이 아닌 하루 전날의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