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ㆍ시

집 이야기

작성일 : 2023-09-19 09:29
작성자 : 편집부 (ednews2000@hanmail.net)

                                            김   미

 

외주 업체가 이번 주에 80년을 한자리에 버티고 있던 집을 철거한다는 연락이 왔다. 막내인 우리 부부가 그 집에서 시어머니와 10년쯤 살았고 내 신혼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생업 때문에, 그곳은 빈집으로 남겨두고 집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시어머니는 손수 대목수 몇 사람을 들여 지은 집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시어머니는 가난한 집에서 자란 탓에 좋은 집에서 살아 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그런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생전에 그런 집을 짓게 된 여건에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새집을 짓게 만들어 준 시아버지에 대한 신뢰감도 깊었다. 그런 집에서 가족들이 살 수 있게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가장 역할은 충분하다고 여겼다.

시부모와 함께 살았던 며느리들의 증언은 달랐다. 시어머니는 아무리 몸이 아파도 남편을 위해 술 빚는 일만은 쉬는 법이 없었다. 시어머니가 빚은 술을 좋아했던 시아버지는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술독을 들락거렸다. 오전에는 맑은 정신으로 얌전한 모습이지만, 해 질 무렵이 되면 다른 모습의 사람이 되었다. 그들먹한 술독이 비어가면 시아버지 걸음걸이는 휘청거렸고, 입으로 술을 깼다고 며느리들은 귀엣말로 속닥거렸다. 시어머니는 그 소리에 양미간을 찡그리며 화냈다. 너희 시아버지만큼만 하라고 일축해 버렸다. 아무리 많은 술을 마실지라도 대문 앞으로 빚 독촉하러 온 사람 없었다. 우리 마을에서 빚 없이 새집 지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 줄 아느냐며 시아버지의 흠을 말도 못 하게 했다. 시아버지가 과하게 마신 술로 인해 쫓겨 다녔던 며느리들의 고충은 말도 못 꺼내게 했다.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힐끔거리며 저리 금슬이 좋으니 구 남매나 되는 자녀들을 보았다며 웃었다.

시어머니는 마음이 평온한 날이면, 집 이야기를 즐겼다. 젊은 시절 집을 짓기 위해 어린 자녀들과 헛간에서 생활했다. 시어머니는 올망졸망한 자녀들과 아기까지 가진 상황에서 집 짓는 목수들 매 끼니를 해 먹였다. 농사일도 빠짐없이 했으니 힘든 나날이었다. 그래도 새집에서 자녀들이 활발하게 뛰어놀며, 편안하게 살 일을 생각하니 고된 줄 모르고 살았노라고 했다. 넓고 만족스러운 집을 짓기 위해 전답까지 팔았다. 손발이 닳도록 일해 모은 재산이었다.

그렇게 지은 집에 대한 애정도 깊었다. 명절이면 집안 곳곳에 제상을 올렸다. 장독대, , 창고, 농기계, 무쇠솥, 대문, 부뚜막, 우사, 마루, 감나무, 쌀독 등이었다. 해가 뜨면 발 빠르게 제상을 거뒀다. 뒤늦게 보면 미쳐 깜빡한 곳도 있다. 제상을 차릴 때 헤아려 보면 무려 열세 곳이나 되었다.

시어머니는 어린 손자들이 말을 배울 무렵이면 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어머니는 방에 대한 기억도 일일이 전했다. 골방에서는 몇째 며느리가 손자 누구까지 낳아 살다가 집을 사 나갔다. 안쪽 뒷방은 몇째 아들이 공부밖에 몰라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었던 방이었다. 그 아들의 큰 꿈이 사라져 아린 손가락이 되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마구간이 딸린 방에서는 몇째 아들이 잠을 자며, 소를 잘 키워 살림 밑천을 마련해 갔노라고 했다.

내가 결혼해 오던 해 그 마구간 암소가 송아지를 가졌다. 그 소 기르는 일이 어느새 내 몫의 일이 되어 버렸다. 홑몸이 아닌 암소를 더 좋은 먹이와 잠자리를 제공하고자 애썼다. 한겨울에는 너무 차지 않는 물을 마시게 하고자, 군불을 지퍼 따뜻한 물을 주었다. 암소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것만도 가족 같은 느낌이었다. 애지중지 기른 암소가 쌍둥이 송아지를 분만해 두 배의 기쁨도 누렸다. 그 두 마리의 송아지가 온 마당을 뛰어다니며 무럭무럭 자랐다. 똑같은 크기에 순한 눈의 송아지가 꼭 아기처럼 사랑스러웠다. 나는 어디든 뛰어다니는 송아지가 다치지 않을까 조바심쳤다.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남의 산밭으로 다니며 말썽을 피워 난처한 일을 만들기도 했다. 여러 여건상 송아지가 팔려 간 날이었다. 어미 소는 어린 송아지가 그리워 목멘 울음으로 날밤을 새웠다. 어미 소와 나는 힁한 눈으로 아침을 맞기도 했다.

우리 가족의 발자취가 어린 그 집이 사라진다니, 애달픈 마음이 절절했다. 온 가족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가슴 시렸다.

집은, 그토록 많은 가족을 품어 또 다른 하루를 꿈꾸게 했다, 또한 가족들을 다독다독해 영육을 편히 쉬게 했으며. 세상을 살 수 있는 사랑과 믿음을 심어주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지혜도 알게 했으며.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인내심도 알게 했다. 그리고 대를 이을 수 있는 안정된 장소도 제공하고, 사람에게 주어지는 죽음도 깨닫게 해 주었다.

집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쿵 소리를 내지르며 사라졌다. 우리 가족에 소중한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허망하기만 했다. 가슴이 싸해져 왔다. 80년의 역사를 지닌 집은 순간에 사라졌다. 건물을 들어내자, 그 자리는 오래된 된장 빛 흙이었다. 그 이후 흙은, 무수한 푸른 잎들을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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